진중권 지음·아웃사이더 발행·1만4,500원
"예술이 누추한 존재를 고상하게 치장하는 장식품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무엇보다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아름답게 형상하는 데 필요한 창조적 영감을 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문화비평가 진중권(40)의 미학 에세이집 '앙겔루스 노부스'는 근대미학이 '아름다움'의 맨 얼굴에 덕지덕지 발라 놓은 화장을 벗기기 위한 작은 시도이다. 그가 교정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현실과 관계없는 향유의 대상, 나아가 사회적 신분을 가리키는 기호로 전락해 산문적이기 짝이 없는 부르주아적 삶을 치장하는 장신구가 돼 버린' 예술이다.
그에 따르면 근대 미학은 예술 작품에 대한 논평이 중심이 되는 인식론적 미학이다. 예술 작품을 보고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가, 내용이 뭔가를 이성으로 파악하는 데 치중했다는 것이다. 거기서 예술은 '삶을 예술적으로 조직하기 위한 영감의 원천이 되는 대신, 부르주아적 삶과 부르주아적 세계의 비미학성을 감추는 포장지'가 돼 버렸으며 그래서 삶의 가운데서는 찾아볼 수 없고 오로지 '콘서트홀과 미술관 안'에 있게 됐다.
왜곡의 일단은 근대 이후 서양 미술사에서 회화적 수단으로 공간과 시간을 정복하려는 시도에서 엿볼 수 있다. '공간과 시간은 존재의 형식이다. 일단 공간과 시간이 정복되면, 이 확보된 형식 안에 우리는 사물을 질서정연하게 배열할 수 있다. 그 바탕에 자연을 경제행위의 모태로 삼는 중세 농업경제에서, 이윤추구를 위해 자연을 마음대로 착취하는 초기 자본주의로의 발달이라는 어떤 끈적끈적한 물질적 사정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180쪽)
그래서 이번 에세이집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존재미학'이다. 미셸 푸코가 '쾌락의 활용'에서 썼다는 이 말은 인식을 앞세운 근대적 미 해석이 지닌 맹점을 발견하고 그 가운데 소외된 인간 존재의 감성과 생을 예술 작품처럼 가꿔나가고 해방하려는 시도를 지칭한다.
'정신' '설득' '필연' '보편자' 등 근대가 금과옥조로 여겨온 언어 대신 그는 광기와 도취, 우연과 개별자를 강조한다. 장 레옹 제롬의 유화 '판사들 앞의 프리네'에 등장하는 나신의 창부(娼婦) 프리네는 자유로운 삶을 누리고자 했으며, 플라톤의 에로스란 육체에 대한 탐닉도, 순수한 정신만의 사랑도 아닌 '분별을 가진 사랑'이었다는 점을 밝히는 것도 그런 작업의 일환이다.
그에게 삶과 유리되지 않은 예술을 구현한 인간은 플라톤이 "미친 소크라테스"라고 부른 디오게네스이다. "소크라테스가 합리적 이성이라면 디오게네스는 냉소적 이성이다. 소크라테스가 입으로 논증을 했다면 디오게네스는 몸으로 논증을 했다. 그의 기행은 존재를 예술로 양식화하는 방식이었다."
'월간 우리교육'에 연재한 20쪽 분량의 짧은 에세이 10편을 한데 모은 책의 마지막 장에서 그는 파울 클레의 그림 '앙겔루스 노부스(新天使)'에 그의 '존재미학론'을 집약한다. 첫 대면에 눈물을 머금었다는 그림에서 그는 삶과 죽음, 이상과 현실, 민주와 독재가 대립했던 1980년대의 아픈 '삶의 기억'을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그의 내면에 담긴 말은 책 가운데 인용한 발터 벤야민의 '역사의 개념에 관하여'라는 대목을 닮은 것인지도 모른다. "앙겔루스 노부스라는 천사 하나가 그려져 있다. 마치 그의 시선이 응시하는 곳으로부터 떨어지려고 하는 듯한 모습으로. 그의 눈은 찢어졌고, 입은 벌어져 있으며, 그의 날개는 펼쳐져 있다. 역사의 천사는 아마도 이런 모습이리라. … 아마 그는 그 자리에 머물러 죽은 자를 깨우고, 패배한 자들을 한데 모으고 싶은 모양이다.… 난폭한 바람이 천사를 끊임없이 그가 등을 돌린 미래로 날려 보내고, 그 동안 그의 눈앞에서 폐허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아만 간다. 우리가 '진보'라 부르는 것은 바로 이 폭풍이리라." 아름다움을 응시하는 불구의 시선을 교정하고, 삶의 한 가운데에서 미를 보듬어 채우려는 노력이 이 책에는 담겨 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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