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앳된 얼굴의 한 젊은 여성이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주인공은 서울대 행정대학원에 첫 여교수로 임용된 우지숙(36) 전 서울여대 정보영상학부 교수. 기대를 모았던 법대에는 여교수가 임용되지 못했지만 1959년 법대 내 전문대학원으로 설립됐던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고급 공무원 교육기관으로 정평이 나있는 서울대 행정대학원에 44년 만에 최초의 여성으로 그가 강단에 서게 된 것이다.그가 주목을 끌었던 또 다른 이유는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85학번으로 비서울대 출신이라는 것. 교육부가 신임 교수 채용시 3분의 1을 다른 대학 출신 교수로 채용하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서울대 교수 중 모교 출신의 비율은 지난 해 기준 전체의 95.5%에 달한다. 금녀와 타대 배제라는 서울대의 두 성역을 깨뜨린 그가 강단에 선 지 두 달이 지났다.
우 교수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언론학 석·박사를, 뉴욕대에서 법학 박사학위(J.D.)를 받은 실력파. 우 교수는 "사실 고교 시절부터 언제나 최고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는 "하지만 공부에 파고들기 시작한 후에는 일종의 모험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여기서 무너지면 더 이상 개인의 실패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이 있었다"고 했다. 여자로서 교수 자리를 얻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미국에서 공부를 할 때에도 서울대 출신의 학생들과 경쟁해야 했던 탓이다. 그래서 더 좋은 대학을 골랐고 이왕이면 학위도 하나 더 땄다.
1997년 귀국해 정보통신정책연구소의 책임연구원으로 재직할 당시 박사급 연구원 50명 중 여성은 그가 유일했다. "귀국과 함께 모든 것이 어려웠습니다. 잘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되뇌었지요." 교수 채용에서 낙방한 경험도 있다. '혹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라는 의문도 잠시 가져보았지만 그런 생각이 결코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경희대에 재직 중인 남편(법대 이재협 교수)과 친구, 선배들은 "스스로를 미리 한계에 가둘 필요는 없다"고 충고했다.
여성의 경우 사회적 지위가 올라갈수록 숫자가 적어지기 때문에 쉽게 눈에 띄고 주목을 받는다는 사실이 일종의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학부 시절부터 자신의 역할 모델이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는 그는 이미 이 곳 학생 중 30%에 달하는 여학생들에게 하나의 기대가 되고 있다. 가장 젊고 또 유일한 여교수를 이 곳 여학생들은 친근하게 생각하고 따르는 분위기다. 인터뷰 도중에도 계속해서 여학생들이 들락날락 했다. 그는 "차별보다는 동성간의 친밀한 커뮤니케이션의 부재가 더 힘들었다"며 "맞서기 보다는 융화의 전략을 택하고 싶고 이에 앞서 여성들 간의 연대는 필수"라고 말했다.
언론학과 법학을 함께 전공한 보기 드문 학력에 더해 유연하게 열린 사고를 높이 평가받는 우 교수는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 도메인 분쟁 패널리스트, 전자거래분쟁조정위원회 위원 등 왕성한 대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소리바다 폐쇄와 관련, 저작권 공유의 입장에서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이론적 배경을 제공해 온 진보적 성향의 지적재산권 및 인터넷 도메인 분쟁 전문가이기도 하다. 대학원에서 '인터넷 규제와 법'을 강의하고 있는 우 교수는 "네트워크 환경의 발전으로 인해 소리바다 폐쇄 판결은 가장 강력하지만 또 한편으로 지극히 제한적인 효력을 가진 판결이 되었다"며 "인터넷이 열어 놓은 가능성이 인쇄매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기존의 법 체계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그의 말을 들으면서 어쩌면 우 교수 자신이 인터넷처럼 기존 질서를 흔드는 새로운 가능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은형기자 voice@hk.co.kr
사진=배우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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