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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림]포크 동호회 "바람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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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림]포크 동호회 "바람새"

입력
2003.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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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마시고 여자 나오는 술집 가는 게 중년 문화의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가 제대로 된 문화를 누릴 수 있어야 건강한 사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인터넷 포크 동호회 '바람새'(www.windbird.pe.kr) 회원들은 요즘 6월29일 문화일보홀에서 열리는 포크가수 윤연선씨의 콘서트 준비에 여념이 없다. 이 콘서트는 온전히 바람새 회원들의 힘으로 마련하는 무대. 대관료와 음향시설 준비 등에 드는 약 2,000만원의 비용을 회원 모금으로 충당했고, 사진을 찍는 회원이 포스터를 제작하고, 몇 몇 회원은 티켓 예매를 맡았다. 거리에 포스터 붙이는 일이나 홍보도 회원들이 직접 할 예정이다. "어느 날 거리에서 점잖은 중년 신사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포스터를 붙이고 있다면 바람새 회원일 확률이 높다"고.바람새는 1999년초 이성길(47·(주)ACTS 이사)씨의 개인 홈페이지에서 시작해 70년대 포크 문화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한 이들이 하나 둘씩 모여 지금은 회원이 2만 여 명에 이른다. 7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40대가 주축이다. 옛 노래를 들으며 노래에 얽힌 추억을 공유하고 친목을 다진다는 점에서 다른 인터넷 문화 동호회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바람새는 단순히 문화를 함께 수용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즐길 문화는 우리가 만들어 나가자"는 적극적인 자세를 지녀 특별하다. 게다가 회원들은 "잊혀져 가는 포크 문화는 우리가 지킨다"는 투철한 사명감까지 공유하고 있다.

중년 문화, 우리가 만든다

바람새는 노래를 접고 조용히 지내는 옛 포크 가수를 다시 무대에 올리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윤연선 콘서트를 시작으로 70년대 대학생 포크 가수들의 집결지였던 YWCA 청개구리홀을 되살리자는 의미에서 포크 가수와 함께 하는 '청개구리 부활 콘서트'도 구상 중에 있다. 이미 김의철, 방의경, 현경과 영애 등이 참가 의사를 밝혀왔다. 뿐만 아니라 70년대의 암울했던 시대 상황 때문에 '창법 미숙' 등의 황당한 이유로 금지곡으로 묶였던 앨범을 복원해 다시 세상에 내 놓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첫 작품은 정권의 검열에 걸려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던 한국 포크의 대부 김의철씨의 음반이 될 듯하다.

데이터 베이스로 포크 역사 집대성

포크의 역사를 집대성하는 데이터 베이스 구축 역시 바람새 회원의 노력으로 결실을 맺고 있다. 김의철, 방의경, 양병집, 현경과 영애, 김민기, 서유석, 양희은, 한대수 등 바람새 사이트에서 들을 수 있는 포크 음반은 총 2,000장 정도. "70년대 포크 가요의 90% 가량을 망라하고 있다"고 회원들은 자부한다. 또 68∼80년의 포크 가요를 연도별로 데이터 베이스로 정리했다. 회원 김민수(43)씨는 이런 작업이 안타까움에서 비롯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는 가요 DB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아요. 문화관광부에조차 목록이 남아 있지 않죠. 그나마 방송사에서 LP판을 보관해 왔는데 요즘은 KBS와 CBS 말고는 방송국에서도 LP판은 대부분 처분했다고 하더군요. 이대로 가다가는 70년대음악이 완전히 잊혀질 겁니다."

가끔은 포크를 되살리려는 동호회의 순수한 목적이 뜻하지 않는 오해를 부르기도 한다. 지난해 음악저작권 협회에서 '저작권료를 내지 않고 음악을 대량으로 인터넷에서 방송하고 있다'며 저작권료를 낼 것을 요구해 요즘 한 달에 15만원씩 꼬박꼬박 저작권료를 내고 있다.

20대의 순수함에 대한 그리움

"직장에서 자리 잡고 결혼하고 아이들 낳아서 뒷바라지 하다 보니 그 동안은 문화에 대한 욕구는 느낄 새도 없었다"는 게 회원들의 공통된 고백. 하지만 이제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돼 문화를 즐기려 미사리 일대의 카페도 기웃거리고 '열린 음악회'나 '가요무대' 같은 TV 프로그램으로 잠시 향수를 달래기도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에는 부족했다. 상명대 중문과 박석(46) 교수는 "우리가 즐길 만한 문화가 어디 있나요. 사실 40대가 경제 주체인데 40대를 위한 문화는 없고 40대한테 돈 타 쓰는 10·20대를 위한 문화만 넘쳐 나잖아요. 이제 주머니를 털어서라도 우리만의 문화를 즐기고 싶은 게 바람새 회원들의 마음"이라고 말했다.

회원 모두에게 바람새라는 공간은 너무도 소중하다. 회원들은 "바람새는 별천지 같은 곳"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들이 지키려 하는 것은 단순히 70년대의 노래 뿐만은 아니다. 홈지기 이성길씨는 "함께 공연을 준비하며 순수했던 젊은 시절의 열정을 기억해 내기도 하고 같은 세대끼리 모여 음악을 들으면서 인생의 동반자를 만난 듯한 든든한 마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들이 진정 지키고 싶은 것은 그들 모두에게 너무도 소중했던 20대의 정열과 순수함인지도 모른다.

/최지향기자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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