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한국의 소송판도] <8> 환경소송 (하)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한국의 소송판도] <8> 환경소송 (하)

입력
2003.05.16 00:00
0 0

사과나무가 폐수 때문에 시들어 가고, 공장 매연 때문에 목이 아프다고 주장한다면 법원은 당연히 "그 증거가 무엇이냐"고 물을 것이다.환경 피해를 금전적으로 보상받기 위해 제기하는 '배상적 소송'의 핵심은 원인과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 입증'에 있다. 법원은 어느 선에서 '인과관계가 입증됐다'고 결정해야 하는지를 고민해 왔고, 그런 고민 끝에 탄생한 것이 '개연성 이론'이다. 개연성 이론이란 인과관계가 완벽히 입증되지 않았더라도 고도의 '개연성'을 추정할 수 있을 경우 피해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개연성 이론을 판례법상으로 확립 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1984년 진해화학사건(81다558)에 대한 판결이다. 진해화학의 폐수 방류로 김 양식장에 피해를 입었다며 경남 의창군이 낸 소송에 대해 대법원은 개연성 이론의 타당성을 적극적으로 명시했다. 원고가 ①오염물질의 배출 ②그 물질의 피해물 도달 ③손해의 발생사실 등의 개연성 정도만 입증 한다면, 가해자측에서 적극적으로 그것이 무해하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특히 1997년 현대자동차 폐수배출 사건(95다2692)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공해소송에 있어서 원고에게 과학적으로 엄밀한 증명을 요구한다면 공해로 인한 사법적 구제를 사실상 거부하는 결과가 될 우려가 있다"고 판시, 환경소송에 있어 개연성 이론의 불가피성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 대법원은 91년 나전모방사건(89다카1275) 판결에서 유해물질이 업체에서 배출되긴 했지만 공기 중에 불가항력적으로 펴져나간 '자연력'의 작용을 인정, 배상액에서 일정 부분을 공제하는 첫 판례를 만들었다.

오염 사건과 달리 소위 '가해자'가 눈에 보이는 일조 침해, 악취, 소음 사건은 '인과 관계' 증명보다 피해 정도가 '수인 한도'(견딜 수 있는 한도)를 넘어 섰는지가 쟁점이 된다. 현장 검증으로 피해 정도를 알 수 있는 일조권 사건은 상대적으로 가장 '마음 편한' 소송 중 하나이다. 법원은 최근 교량 때문에 그늘이 생겨 채소 재배 수입이 감소한 사건과 아파트 분양에서 일조 침해 사실을 알리지 않은 사건에 대한 손배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일조 소송은 일조권 피해에 따른 부동산 가치하락 등을 측정해야 하며, 이를 평가해주는 용역 제공 공공기관으로 한국감정원 부동산컨설팅사업단이 있다. 그러나 성냥갑 같이 건물들이 밀집해 있는 생활 속에서 어느 정도의 일조권 침해는 어쩔 수 없다는 점에 대해 법원도 수긍하는 입장인 만큼, 발생한 피해가 확실한 경우에만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조 침해에 비해 소음이나 악취 피해 사건 등은 증거 보전의 어려움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1심 승소 판결이 난 김포공항 소음 피해사건은 언제든지 소음 정도를 측정할 수 있어 비교적 증명이 쉬운 경우였지만, 일시적으로 발생한 소음은 증명이 어렵다. 근처 공사장에서 발생한 소음으로 피해를 입었다 해도 이후 당시 소음의 정도와 이로 인한 피해를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전문가에게 증명을 의뢰하는 과정에서 측정 비용도 많이 든다.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업체 등 환경 가해자에 대한 관리 소홀에 대해 국가나 지자체에 대한 손배 책임에 대해 법원의 판단은 아직 소극적이라는 점이다. 2001년 대법원은 낙동강 오염 사건에 대해 부산지방변호사회와 시민단체가 국가와 부산시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 대한 1심, 항소심의 패소 판결을 그대로 인용, 상고를 기각했다.

또 폐수로 강이 오염됐다 해도 그 물을 마시는 등의 직접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한 손배 소송을 제기할 수 없도록 돼 있는 민사 소송의 근본적 한계도 환경 소송에서 '환경 보전'이라는 기본 취지를 무색케 하는 아이러니를 낳고 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 중앙환경분쟁위 통하면

높은 변호사 수임료, 번거롭고 긴 소송 절차 때문에 고개를 가로젓는 환경 분쟁 피해자들을 위해 활성화하고 있는 기관이 중앙환경분쟁위원회다.

시간을 오래 끌수록 피해액이 늘어나는 환경 분쟁의 성격상 위원회는 법원보다 빠른 분쟁 해결을 장점으로 한다. 환경분쟁조정법에 의해 준사법권을 부여받아 1991년 문을 연 위원회는 사안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법원과 달리 합의에 의한 분쟁 해소에 중점을 둔다.

위원회가 처리하는 조정의 종류는 사실 조사 등의 절차 없이 단순히 합의를 유도하는 '알선'(3개월), 사실 조사 과정을 거쳐 조정안을 작성해 합의를 권고하는 '조정'(9개월), 사실 조사 및 당사자 심문 후 피해 배상액을 결정하는 '재정'(9개월) 등으로 나뉜다.

위원회의 결정 내용은 법원보다 한 발 앞서 있다. 지난 1일에는 아파트 주민들이 층간 소음에 따른 정신적 피해에 대해 건설업체를 상대로 제기한 배상 요구를 최초로 받아 들여 "보수 비용으로 1억5,566만여원을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이에 앞서 지난 3월에는 지하철 철도 소음 피해 사건에 대해 "서울지하철공사는 2억5,588만원을 배상하고 방음 대책을 강구하라"고 결정하기도 했다.

수수료는 피해신청 금액과 조정 종류에 따라 달라지며 500만원 이하 재정신청의 경우는 2만원이다. 홈페이지(edc.me.go.kr)나 전화(02-504-9303∼5)로 상담 및 신청이 가능하다.

/이진희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