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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정의가 강물처럼?

입력
2003.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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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을 만들겠다더니…. 김대중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민주당 대표를 지낸 거물 정치인이 뇌물 먹은 혐의로 구속되어 수감되는 모습을 보면서, 또 한번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뇌물 먹고 잡혀가는 정치인이 한 두 사람이랴만, '개혁'과 '양심'을 버릇처럼 입에 달고 살아온 사람이어서 너무 충격이 크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수뢰혐의로 구속된 것을 본 적이 없어 더욱 놀랍다.

오래 야당생활을 해온 그는 이전 정권의 부정과 부패를 앞장서 규탄해온 사람이다. 좋은 대학 나오고, 의리 있고 깨끗한 이미지를 가졌던 그가 고등학교 후배 기업인에게서 청탁성 돈을 받은 혐의로 나락에 떨어질 줄 누가 알았으랴.

그것도 대통령 비서실장 집무실과 공관에서 뇌물을 받았다니, 공사(公私)를 가릴 줄도 모르는 무뢰배였단 말인가. 그는 돈을 받고 경제수석 비서관을 만나도록 주선해주었다 한다. 그 기업에 2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이 투입됐으니 국민의 세금으로 먹자판 잔치를 벌인 셈이다.

더욱 놀라운 일은 같은 사건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큰아들과 또 다른 비서관 이름이 들먹여진다는 사실이다.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되었던 대통령 아들의 한 측근은 15일 퇴출 위기에 몰린 기업인에게서 거액을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 스포츠계에 종사하는 그가 돈을 먹은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 큰아들에게 가는 돈을 받았다는 것이 문제다. 대통령 아들과 대학 동문에 동향 출신이라는 막강한 배경을 가진 사람이니 그런 심부름을 한다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다.

김대중 정권의 부패상이 그 정도 뿐이던가. 근래 갖가지 비리 혐의로 구속된 사람을 대충 훑어보아도 가히 기록적이다. 개혁의 전위부대인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위원회, 국세청 3기관의 장이 갖가지 독직사건으로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되었다.

보건복지부 장관도 수뢰혐의로 기소되었고, 불구속 기소된 국세청장의 전임자는 이용호 게이트 관련 혐의가 드러나자 해외로 도망쳐 버렸다. 역대 어느 정권에도 없던 경제 3기관장 형사처벌은 아마 세계적인 희귀사례가 아닐까.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김 전 대통령의 2남과 3남이 돈 먹은 혐의로 한꺼번에 구속된 전대미문의 사건이 있었고, 검찰총장 두 사람의 독직사건도 기록에 남을 일이었다. 사정 민정 같은 핵심요직 비서관들의 독직도 들어보기 어려운 일이고, 대통령의 부인이 연루된 옷 로비 사건도 희귀한 사건이었다. 대통령의 분신이라던 동교동 가신의 맏형과 대통령 집사가 구속된 일은 이제 기억의 저편에서 가물거린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5년여 전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할 때 이 말을 듣고 나는 행복했다. 정의가 강물처럼 도도히 흐르는 세상이라니…. 얼마나 고대하고 열망해온 세상인가. 불의와 비리가 발붙일 땅이 없어지고, 의로움으로 세상이 충만해진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민주주의 세상에 태어난 기쁨,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는 보람이 뒤섞여 가슴이 울렁거렸다. 탄압 받은 정치인의 징표처럼 다리를 저는 사람, 민주화 운동의 상징 인물이 대통령이 된 것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멋진 일이었던가.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사람이야 없었겠지만, 대통령 측근들이 공직에 나가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대통령과 관료들이 IMF 구제금융 수렁에 빠진 나라를 건지겠다고 밤낮없이 뛰는 모습에서 희망의 싹을 볼 수 있었다. 한국의 첫 노벨상이 그에게 돌아갔을 때의 축하도 충심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이게 무언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건강이 안 좋다는 것은 알지만, 김대중 전대통령님, 무어라 한마디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문 창 재 논설위원실장cjm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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