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전국운송하역노조 화물연대와의 협상이 15일 새벽 전격 타결됐으나 협상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이 노출돼 심각한 후유증이 예상된다.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늑장대응에 나섰다가 벼랑 끝에 몰린 정부가 두 손을 드는 바람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은 꼴'이 됐기 때문이다. 또 '법과 원칙'을 주장하며 '대화와 타협'에 나섰던 정부가 막판에 대폭 양보함으로써 스스로 원칙을 무너뜨려 버렸다. 따라서 향후 노동계는 물론 버스·택시업계 등의 유사한 요구를 거절할 명분을 상실하게 됐다.주요 합의사항 합의 사항중 핵심은 사업용 화물자동차에 사용되는 경유에 대해 정부가 유류세 인상분의 50%를 보전해오던 것을 올 7월 인상분부터는 전액 보전해 주기로 한 것이다. 정부가 '세율조정은 없다'는 당초 원칙을 고수하는 대신, '보조금지급'이라는 우회카드를 꺼낸 셈이다.
그러나 이는 세금인하나 다름없는 조치인 데다 힘으로 '밀어붙이면 해결된다'는 또 하나의 선례를 남겼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다. 이번 합의에 따라 2,000억원으로 추정되는 재원마련을 위해 정부는 또 다른 종류의 세금을 걷어야 하고 이는 결국 국민부담으로 이어지게 된다.
경유에 부과되는 교통세는 이미 2000년 에너지세제 개편안에 따라 2001년을 시작으로 2006년까지 매년 7월이 되면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프로그램이 확정된 상태다.
고속도로 통행요금 야간 할인시간대를 기존 0시∼오전6시에서 오후 10시∼오전 6시로 2시간 연장한 것 역시 연간 50억∼60억원 정도 손실이 예상된다. 결국 정부가 재정부담을 떠안는 조건으로 화물대란을 막은 셈이다.
정부는 이밖에 근로소득세제 개선, 노동자성인정, 지입제 폐지, 다단계구조개선, 과적단속 등도 대부분 화물연대의 대정부 요구사항에 대해 가능한 빠른 시간내에 추진키로 약속을 한 상태다.
남은 문제점 화물파업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수급 불균형이다. 최근 5년간 사업용 화물차는 70%가 증가한 반면 물동량은 7.3%가 증가하는데 그쳤다. 화물차량 숫자가 물동량보다 10배나 빠른 속도로 증가하다 보니 과당경쟁이 발생하면서 지입차주의 수익이 크게 줄어들었다.
이 경우 시장원리에 따라 자연스런 퇴출이 이루어져야 하나 보조금지급을 통해 정부가 인위적으로 개입, 시장을 떠받치는 결과를 초래했다. 따라서 이런 상황을 언제까지 끌고 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또 중앙단위 산별교섭 형태의 운송료 협상을 남겨두고 있어 화물대란의 불씨가 완전 진화된 것은 아니다.
전반적인 노동정책의 관점에서 볼 때도 정부가 두산중공업, 철도에 이어 화물에 이르기 까지 집단행동에 밀리는 양상을 보이면서 노동계에 '투쟁만능주의'라는 기대감을 심어준 것도 큰 부담이 될 전망이다.
벌써 버스나 택시업계도 화물업체와 유사한 방식으로 정부가 손실을 보전을 해달라며 행동에 나설 조짐을 보이고 있다. 새 정부출범 불과 3개월 만에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집단행동에 정부가 원칙없이 물러서면서 산적한 노동현안과 임금 및 단체협상 등에서 노동계의 입김이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있다.
/조재우기자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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