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란 때 보다 더 심각하다는 최근 경기를 놓고, 이미 저점을 지났으며 조만간 나아질 수 있다는 시각과 장기불황의 전조라는 시각이 대비되면서 정책에 대한 주문도 제각각이다. 일부에서는 대대적 경기부양책을 주문하고, 다른 쪽에서는 부동산 과열을 우려해 신중한 자세를 촉구하고 있다.그러나 현 상황은 단순한 경기차원의 정책처방으로는 해소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를 반영하고 있음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 더욱이 사스 공포, 달러약세에 따른 환위험, 자본흐름의 변동성 증가까지 불안요인으로 가세하고 있다.
세계경제의 3대축 중 일본과 독일의 디플레이션 압력이 심화하고 있으며, 자국이익 우선의 각국 환율정책이 세계적 금융불안의 원인으로 작용할 공산이 있다. 세계화 이후 자리잡은 차입과 지출 위주의 성장전략 후유증은 수익흐름의 악화로 이어져 선진경제의 성장탄력을 짓누르고 있다. 따라서 자체적 수요기반이 취약해 선진경제에 의존하고 있는 개도국 경제의 장래는 단기적 호전기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투명하다.
우리 경제는 앞으로도 상당한 불안정의 파고를 넘어야 한다. SK사태와 카드채로 금융부문의 취약성이 확인되면서 위험기피 태도가 심해지고 실물부문의 투자기회가 거의 소진됨에 따라 부동산과 같은 자산시장이 이제 경기대책에 반응할 수 있는 유일한 부문이 됐다. 따라서 실물경기의 과도한 냉각을 '지연'시키려는 정책적 노력이 예측 불허의 부동산 시장을 자극해 이와 직결된 금융부문의 부실을 초래함으로써 장기침체의 원인을 제공하기 십상인 상황이다. 내부적 불안요인이 외부적 충격으로 인해 쉽게 가시화할 수 있는 여건인 것이다.
최근 한은의 콜금리 인하조치는 경제상황이 심각하고 부작용이 없는 정책수단도 극히 제한된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불가피한 선택으로 간주된다. 특히 청년실업 및 신용불량자 급증, 집단 이기주의 등 경제불안 요인이 부각된 가운데 부동산 과열양상은 여러 정책대응 수단을 제약하고 있다. 더욱이 지금과 같이 자산시장과 금융부문이 얽힌 상태에서는 정책효과가 기대와 달리 엉뚱한 곳에서 나타날 우려가 크다. 선진경제에서라면 당연히 취하는 조치가 우리의 환경에서는 여간 조심스럽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실 개방경제 하에서 수요관리를 위한 정책수단은 그 효과가 이미 크게 약해졌다. 특히 우리와 같은 소개방경제는 선진국의 정책효과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으며, 정책노력은 이러한 큰 틀 안에서만 제한적으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체제적 효율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태에서 안정화 노력은 무의미하다. 더욱이 투기적 요인이 지배하는 시장, 산업의 양극화· 공동화, 금융부문의 과도한 위험기피 현상은 체제적 개선의 필요성을 일깨워준다.
따라서 지금 상황에서는 금리정책보다는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시장확보 노력, 지배구조 개선, 시장규율 강화를 통한 금융기능의 정상화로써 경쟁력있는 산업과 고용기반을 확충해나가는 것이 급선무이다.
체제적 차원의 경쟁력이 중시되어야 할 때에 거시정책 실패만 탓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과거 반경기(counter-cyclical)정책에 의존했던 목표를 이제는 시장기능과 경쟁력이라는 수단으로 실현하는 수 밖에 없다. 더 이상 유효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은 정부의 정책대응에 지나친 기대를 하기 어렵다. 정책의존도가 높을수록 경제체제의 효율성을 제고하려는 자발적 노력도 해보지 못하고 거듭된 경기부침과 부실처리, 구조적 불균형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
결국 개별단위의 경쟁력과 선진경제체제의 시너지효과는 조금만 상황이 나빠져도 경기대책을 주문하는 조급한 태도가 아니라 냉정한 시장의 평가를 통해 다져지고 성숙되어야 한다.
최 공 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