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방미에 때맞춰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인 뉴욕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가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겨냥한 기사를 실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두 신문의 기사는 북한 핵문제가 최대쟁점이 될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미국 신문이니까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뒷맛은 개운치 않다.■ 워싱턴 포스트는 일요일자 섹션 D 스타일면 머릿기사와 4면 전면에 '아들의 죄상'이라는 제목 아래 김정일을 해부했다. 김정일의 출생을 둘러싼 엉터리 신화 등을 잔뜩 소개한 뒤 "그가 바로 오늘날 핵무기를 가지고 세계를 조롱하고 있는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잔인한 독재자"라고 말했다. 이 신문은 이어 "지난 10년 동안 북한주민 100만명 이상이 굶어 죽었는데도, 김정일은 아버지와 자신의 신격화를 위해 거대한 기념탑을 세우고, 스타디움에서 장관을 연출하기 위해 수조원의 돈을 뿌렸다"고 지적했다. 미 중앙정보국(CIA)에서 심리분석 전문가로 일했던 조지 워싱턴대의 심리학 교수는 "김정일은 가장 위험한 인격 분열증과 악성 자기도취증의 핵심특징을 가지고 있다"면서 "이 같은 분열증은 자기 몰두, 감정이입 불능, 양심 부족, 과대망상 등 절제되지 않는 공격욕구 등을 나타낸다"고 주장했다.
■ 뉴욕 타임스는 미국이 이라크 전쟁에서 사담 후세인의 은신 추정지에 가했던 것과 같은 지도부 정밀타격을 통해 북한을 억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최악의 경우 김정일의 행선지를 추적, 정밀 폭격을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 기사의 제목은 '이라크 전쟁으로 얻은 교훈들 가운데는 북한 지도자를 겁주는 방법도 포함돼 있다'이다. 국방부 고위관리를 소식통으로 한 점으로 미뤄, 대북 강경책을 주장하는 국방부 인사들이 흘려 주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 기사는 김정일이 이라크 전쟁을 전후로 50일 동안 공식석상에서 자취를 감춘 것은 자신이 공격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 미국의 보통 사람들은 김정일과 북한을 잘 모른다. 유력한 두 신문의 기사는 노 대통령의 방미 기사와 맞물려 김정일과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각인시키는 데 일조를 할 것이다. 특히 15일(한국시간)에 있을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러한 기사가 나오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을 김정일이 이 기사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해진다.
/이병규 논설위원 veroic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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