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개봉하는 영화 '아리랑'(이두용 감독)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옛날 모습으로 관객 앞에 등장한다. 흑백 화면에 변사(양택조)의 설명으로 스토리를 엮어 나가는 무성영화 스타일의 이 영화는 화려한 기술이 주도하는 오늘의 영화계에서 흐릿하게 색 바랜 옛날 사진처럼 오히려 새롭다. 한국 영화로는 처음으로 남북한에서 동시 개봉한다는 특별한 기록도 만든다. '아리랑의 전설'에 이야깃거리를 더하는 셈이다.1926년 조선키네마 프로덕션이 제작한 흑백무성영화 '아리랑'은 한국영화의 전설이다. 외국영화만 보던 수준에서 벗어나 제작을 시작한 초창기 시절에 나온 이 영화는 주연을 맡았던 나운규를 불세출의 스타로 만들었고, 한국영화에 대한 관객의 시선을 바꾸었다. 한국영화의 태동을 확인시켜준 기념비적 작품이다.
동시에 '아리랑'은 비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한국영화의 전설이지만 제작자가 일본인(요도 도라조)이었다는 점에서 '순 한국영화'라고 자부하기에는 태생적 비극이 있고, 아련한 전설만을 남긴 채 필름이 사라져 버려 그 모습을 다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 이전에도 '아리랑'은 여러 편 나왔다. 속편 격인 '아리랑 그 후의 이야기'(1930) '아리랑 제 3편'(1936)을 비롯, 해방 이후 현대식으로 재구성한 '아리랑'(1954년, 이강천 감독), 나운규 사거 20주년을 맞아 추모작으로 다시 만든 '아리랑'(1957년, 김소동 감독), 컬러로 만든 유현목 감독의 '아리랑'(1968년)과 임원식 감독의 '아리랑'(1974년) 등이다.
첫 '아리랑'이 관객의 열광적 호응을 얻은 것은 돈과 권력을 앞세워 마을 사람을 괴롭히는 악독한 부자와 그 앞잡이에 대한 응징이 식민지 시대의 암울함을 잠시나마 걷어주는 위안으로 비친 덕분이다. 한 편의 영화가 동시대의 감성에 접근하며 대중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은 '아리랑'을 특별한 영화로 만들었다.
남한에서는 이를 '일제의 압제에 저항하는 민족적 항쟁'의 상징으로 보며, 북한에서는 '인민을 착취하는 악덕 지주계급에 대한 투쟁'으로 보지만 영화사상 '최고의 걸작'이라는 평가만은 공유하고 있다.
이번 '아리랑'의 특징은 첫 영화가 나왔던 당시처럼 흑백, 무성으로 만들고 변사가 설명을 하는 원형의 재현에 충실하려 했다는 점이다. 주인공 영진 일행을 괴롭히는 부잣집 집사 오기호를 부자의 아들로 바꾸고, 일본인 순사에게 끌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는 마지막 장면도 다른 모습으로 처리하는 등 약간의 변화를 주었기 때문에 온전한 재현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그래도 옛 모습에 가장 가깝다고 할 만하다.
시대가 변한 지금도 '아리랑'은 관객을 움직일 수 있을까? 시대와 관객이 변했다. 주인공들이 겪는 비극은 오히려 패러디처럼 '웃기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런 현실을 알면서도 이 영화를 만든 것은 드라마틱한 반전을 기대하는 '역습의 기획'일 수도 있고 영화 자체보다는 '고전의 복원'이나 '남북한 교류' 등에 무게를 싣는 '전략적 기획'일 수도 있다. 어느 쪽으로 평가가 내려질지는 관객의 선택이 좌우할 것이다.
첫 '아리랑'이 한국영화의 태동을 이끌며 관객의 마음을 하나로 엮은 것처럼 이번 영화가 남북한 영화 교류에 새로운 계기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조희문 상명대 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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