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주사 팔상전, 정이품송 등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읽을 수 있는 곳, 그래서 단골 수학여행지로 얘기되는 곳, 한반도의 가장 중심에 위치한 충북의 진산, 돌봉우리인 문장대 등 다채로운 산행의 즐거움을 주는 산….속리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이자 상식이다. 물론 맞다. 그러나 속리산은 품은 훨씬 넓고 크고 넉넉하다. 반질반질할 정도로 사람의 손때가 묻은 곳도 있지만 천혜의 비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자연이 더 많이 남아있다. 속리산의 동남쪽 자락. 신록의 푸른 색을 듬뿍 머금은 옥수가 흐른다. 충청도가 아니다. 엉뚱하게도 경북 문경시다. 그만큼 속리산 계곡은 넓고 깊다.
용추계곡(경북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
문경팔경의 하나로, 충북 괴산군과 문경시의 경계를 이루는 계곡이다. 속리산 자락의 하나인 대야산 봉우리에서 맑은 물이 흐른다. 입구에 들어서 있는 4곳의 식당과 매점을 제외하면 완전히 탈속한 계곡이다. 웬만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 숲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이 계곡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용추계곡의 정점은 용추폭포다. 3단으로 떨어진다. 물은 자기가 떨어지는 바위에 커다란 구멍을 내고 소(沼)를 만들었다. 바위는 모두 하얀 화강암이다. 그래서 고인 물빛이 더욱 푸르다. 두 마리의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을 갖고 있다. 물이 깎아 놓은 바위의 양쪽에 용이 승천하면서 남겨 놓았다는 용비늘 자국이 선명하다.
용추폭포까지 가는 길은 편하다. 계곡 양쪽으로 길이 나 있다. 오른쪽은 등산로, 왼쪽은 임도다. 입구에서 10분 정도 오르면 만날 수 있다. 등산장비는 필요없다. 뾰족구두만 아니면 된다. 가는 길 곳곳에 넓은 너럭바위가 있다. 편안하게 앉아 다리를 쉬거나 탁족(濯足)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용추폭포 위로 20분 거리에 월영대가 있다. 맑은 소다. 밝은 달이 중천에 뜨면 물 위에 달그림자가 드리워진다. 가벼운 트레킹 코스로 제격이다.
산이 유혹한다면 대야산 산행을 즐길 수도 있다. 해발 930m. 용추폭포-월영대-밀재를 거쳐 정상에 올랐다가 다시 내려오는 코스로 약 5시간 걸린다.
선유동계곡(경북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
용추계곡과 이어진 계곡이다. 대야산을 중심으로 충북 괴산쪽의 선유동계곡과 대비를 이룬다.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곳이어서 자연의 향기가 그대로 남아있다. 특히 계곡 양쪽의 소나무는 운치, 그 자체다. 계곡의 길이는 1.7㎞. 시점에 학천정과 끝 지점에 칠우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옛 정자가 있다는 것은 옛 시인과 묵객이 즐겨 찾았다는 뜻. 계류를 중심으로 바위에 많은 석각이 있다. 고운 최치원의 글씨도 있다. '선유구곡(仙遊九谷)'이라고적었다. 옥하대, 영사석, 활청담, 세심대, 관람담, 영규암, 난생뢰, 옥석대를 의미한다.
학천정은 도암 이재의 학문의 뜻을 기리기 위해 후학들이 지은 정자이다. 1906년에 세워졌다. 정자 옆에 자그마한 집을 짓고 도암의 영정을 모셨다. 정자 뒤 거대한 바위에 새겨진 글이 눈을 사로잡는다. '산고수장(山高水長).' 그만큼 아름다운 심산유곡이라는 뜻이다. 찾는 이는 많지 않지만 주차장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용추계곡과 마찬가지로 넓은 바위가 많다. 소나무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쌍용계곡(경북 문경시 농암면 내서리)
속리산의 남쪽 끝자락이 빚어놓은 비경이다. 청룡과 황룡 등 두 마리의 용이 함께 살았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물가에 고즈넉하게 자리를 잡은 사우정이 계곡의 시작이다. 용추나 선유동 계곡에 비해 물길이 크다. 그래서 지류가 많이 발달되어 있다. 메인 계곡을 여행하다가 지류로 접어들면 작고 아름다운 물줄기를 구경할 수 있다.
/문경=글·사진 권오현기자 koh@hk.co.kr
가는 길
경기 여주시와 충북 충주시를 잇는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탄다. 충주IC에서 나오면 길은 두 가지. 편한 길은 3번 국도를 타고 수안보를 거쳐 문경에 이르는 것. 마성면에서 901번 지방도로로 우회전, 약 8㎞ 더 가면 가은읍이다. 읍내 사거리에서 우회전(922번 지방도로), 약 10㎞ 달리면 선유동계곡과 용추계곡이 차례로 나타난다. 가은읍에서 직진, 901, 32번 지방도로로 8㎞ 가면 쌍용계곡이다.
괴산쪽에서 접근하는 방법도 있다. 수안보행 3번 국도에서 34번 국도로 우회전, 약 15㎞ 정도를 달리면 선유동계곡과 용추계곡으로 진입하는 517번 지방도로가 나온다. 길이 복잡하니 길눈이 어두운 사람은 피할 것.
머물 곳
숙박시설은 빈약하다. 용추계곡과 선유동계곡 인근에는 신라장(054-571-3800)이 유일한 여관이다. 벌바위매점(571-5691)에 문의하면 민박집을 소개받을 수 있다. 쌍용계곡에서는 민박을 이용해야 한다.
내서1리 이장(571-3811), 내서2리 이장(571-3690)에게 문의하면 민박 사정을 알 수 있다. 문경시내와 새재도립공원 인근에 숙박시설이 많다. 문경관광호텔(054-571-8001), 문경파크관광호텔(554-5000) 등이 호텔급 숙소이다. 새재파크(571-6069), 수림장파크(571-3291), 목화장여관(555-2441), 모전장여관(555-2650) 등의 장급 여관이 있다.
먹거기
문경의 대표적인 먹거리는 딱 꼬집어 이야기하기가 애매하다. 문경새재라는 걸출한 관광지를 중심으로 '관광지음식'이 대종을 이룬다.
메뉴 보다는 '잘 하는 식당'을 찾는 것이 좋다. 영남집(054-552-9868)은 민물고기 매운탕집. 메기 매운탕, 잡어 매운탕을 낸다. 양념을 아끼지 않아 국물이 걸쭉하고 진하다.
인근의 진남매운탕(552-7777)도 단골손님이 많은 집. 올갱이 무침을 맛볼 수 있다. 문경읍의 새재가든(571-2030)은 맛있는 한우를 먹을 수 있는 집이다. 올갱이 해장국과 산채백반도 낸다.
● 문경 여행법
문경 여행은 다채롭다. 계곡은 물론, 적당한 트레킹 코스, 온천, 그리고 문화유적이 즐비하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새재. 백두대간의 조령산을 넘는 고갯길이다. 영남과 수도권을 잇는 중요한 길이었다. 일제가 길 옆으로 이화령을 만들었고, 다시 이화령 밑으로 터널이 뚫리면서 완전히 옛길이 됐다. 1981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됐고 지금은 트레킹 코스로 활용된다.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 등 관문이 세 곳에 있다. 임진왜란을 겪은 뒤에 지었다. 낯설지 않다. TV 드라마나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거의 대부분의 사극은 이 관문들을 배경으로 찍었다. 새재 입구에 아예 드라마를 위한 세트장까지 있다. 드라마 '왕건' 세트장이다. 단일 드라마의 세트장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가장 꼭대기에 있는 조령관까지 트레킹을 한다면 4시간, 중간 지점인 조곡관을 반환점으로 삼는다면 2시간 남짓이면 된다. 길 양쪽의 녹음이 짙어졌다.
문경온천(054-572-3333)은 최근에 개발됐지만 수질이 좋아 인기가 치솟고 있다. 중탄산천으로 미네랄이 많이 포함된 것이 특징. 칼슘, 나트륨, 마그네슘, 철, 염소, 유리탄산 등이 녹아있다. 공기와 만나면 산화되기 때문에 붉고 탁하게 보인다. 혈액순환, 알레르기성 질환, 신경통, 관절염 등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경에는 유서 깊은 절이 몇 있다. 봉암사와 김용사를 꼽을 수 있다. 우뚝한 돌산인 희양산에 들어있는 봉암사는 신라 헌강왕 5년(879년)에 지어진 절. 보물로 지정된 유적만 5점일 정도로 만만치 않은 내력을 자랑한다. 봉암사는 스님들이 수도하는 절로 부처님 오신 날에만 문을 연다. 일반인은 평소에 참배할 수 없다.
김용사는 신라 진평왕 10년(588년)에 세워진 고찰. 가장 번성했을 때에는 절집만 48동이었고 45개의 말사를 거느렸다고 한다. 지금은 아담한 사찰로 남아있을 뿐이다. 절 입구의 해우소(근심을 해소하는 장소·화장실)가 유명하다. 지은 지 300년이 넘은 목조 건물이다.
/권오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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