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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 라이프/ 안산 의료생활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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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 라이프/ 안산 의료생활협동조합

입력
2003.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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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경기 안산시 상록구 월피동의 새안산의원. 배경숙(31)씨가 일곱살 난 아들을 데리고 찾아와 의사에게 증상을 말한다. 아들은 감기가 심해 열이 솟고 콧물을 흘리는 등 말이 아니었다. "열이 많구나. 어제 뭐하고 놀았니? 지난 겨울에도 감기 때문에 고생 많이 하더니. 앞으로 조심해야겠구나." 이재광(40) 원장이 청진기를 대고 아이 몸을 이러 저리 살피다 이마를 짚고는 친근감 있게 말을 건넸다. 이 원장은 배씨에게 아이가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할 것을 당부하면서 처방전에 적은 약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환자를 불친절하고 퉁명스럽게 대하는 의사가 많잖아요. 그런데 원장 선생님은 병의 성격과 치료방법, 예방법 등을 친절하고 자세하게 말해줍니다. 처방전만 봐서는 제대로 알 수 없는 약의 종류와 효능에 대해서도 설명을 많이 해주지요."

배씨의 말처럼 새안산의원이 유난히 친절한 데는 이유가 있다. 주인이 의사나 원장이 아니라 지역 주민이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 일반 의료원과 다를 바 없는 이곳은 주민 1,000여명이 모은 돈으로 운영되고 수익금 역시 주민을 위해 사용하는 의료생활협동조합이다.

의료생협은 주민이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의사 등 의료 전문가와 함께 설립, 운영하는 자발적인 조직. 국내에선 아직 낯선 개념이지만 가까운 일본만 해도 조합이 140여개, 참여 조합원이 170만명에 달할 정도로 일반화해 있다.

국내서는 1975년 고 장기려 박사가 부산에 설립한 청십자병원이 효시이며 94년 경기 안성의료생협이 세운 안성농민의원이 완벽한 틀을 갖춘 최초의 조합으로 알려져 있다.

안산의료생협은 2000년 4월 설립됐지만 태동은 이보다 10년이나 앞선 91년이다. 주민들이 당시 안산천 상류의 보존녹지지역에 비밀리에 추진되던 도축장 건설 계획을 무산시킨 뒤 '생명과환경을 지키는 안산시민의 모임'을 탄생시킨 것. 이들은 이후 '모든 대중이 의학의 주인이다'라는 신념 아래 '동의학민방연구회'를 조직, 전통 민간요법을 강좌하며 350여명의 수료생을 배출했고 수료생을 주축으로 3,000만원을 모아 병원을 설립했다. 안산의료생협은 새안산의원 말고도 한방 진료를 담당하는 새안산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안산에서 개업의로 일하던 이 원장은 기존 병원 체계로는 주민 건강을 지속적으로 돌보는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 의료생협을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안산의료생협 발족 움직임이 있자 자신의 의원 문을 닫고 창립멤버로 참여했다.

안산의료생협은 세대당 1만원 이상 출자하면 가족 모두 조합원으로 등록돼 시중보다 훨씬 싼 가격에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개별 면접을 통해 꾸준하게 건강 관리를 받게 된다.

얼마 안 되는 병원 수익금을 산행반, 풍물반 등 조합원의 소모임 활동에 지원하고, 보건학교 운영을 통해 조합원 스스로 자신의 건강을 돌볼 수 있는 의료 지식도 가르쳐준다. 매주 목요일에는 이원장이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방문, 건강을 살핀다.

의사와 환자가 서로 의논하고 격의 없이 지낸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조합원이 3년 만에 3배 이상 늘었다.

경창수(42) 기획관리실장은 "의사가 병원의 주인(환자, 조합원)에게 진료를 하니 친절할 수 밖에 없고, 큰 병이 아닌데도 엑스레이 촬영이나 비싼 약 투약을 권하는 등 무리한 의료행위를 할 이유가 없다"며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이런 형태의 병원은 꾸준히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창만기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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