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자를 보시오!" "네 보고 있습니다." "저 사자의 울음소리를 듣습니까?" "…" "내가 당신네 나라에 갔을 때 후한 대접을 받았는데 오늘 답례로 선사할 것은 이 것밖에 없습니다." 일흔 셋의 동산이 경주 불국사 다보탑 앞에서 태국의 승정을 상대로 한 법거래(법거량)다. 동산은 범어사에서 이들을 마중하러 온 것이었다. 선가에서 사자의 울음은 곧 깨달음의 외침이다. 다보탑을 장식하고 있는 돌사자의 포효하는 자태에 감탄하던 태국의 승정과 고승들은 동산의 사자후에 입이 막혔다.선사끼리 주고받는 법거래는 목숨을 내놓고 벌이는 실전이다. 이 상황에선 평소의 지식과 교양은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다. 그야말로 군더더기에 지나지 않는다. 동산의 일갈에 승정 일행은 벼랑 끝으로 몰렸다. 수행의 힘은 펄펄 끓는 가마솥에 떨어진 얼음처럼 녹아버린 것이다. 동산은 이 순간 자비의 손길을 뻗었다.
사실 이들은 동산을 만나기 전까지 몇 차례의 법거래를 통해 은근히 한국불교를 한 수 아래로 여기던 참이었다. 첫 법거래는 공양이었다. 조계종 총무원 간부들은 이들의 공양을 무엇으로 할지 논의하다가 육식으로 정했다. 공양이 끝나고 차를 마시던 중 한국의 한 스님이 물었다.
"우리 대승불교교단에서는 스님들의 육식을 금하고 있는데 어찌하여 소승불교교단에서는 육식을 합니까?"
"죽은 고기도 마음에 걸려 먹지 못하면서 어떻게 산 고기(중생)를 제도한다고 하십니까." 한국 스님들은 할말을 잊었다. 어색한 침묵을 깨고 다른 한국스님이 물었다.
"태국에도 도인이 있습니까?"
"마음이 열리고 나면 두두물물 화화초초(頭頭物物 花花草草)가 도인이 아님이 없지요."삼라만상 어느 것 하나에도 부처의 씨앗이 들어 있지 않은 게 없는 데 이 도리도 모르느냐는 반격이었다. 또 다시 한국측의 판정패였다. "대승불교가 꽃핀 한국에 와서 대승선에 능통한 스님을 뵙기를 원했는데 아직 만나지 못해 서운합니다." 이튿날 태국 고승들은 불국사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약을 올렸다. 그러던 차에 동산을 만나 두 손을 번쩍 든 것이다. 이들은 뒤에 "동산스님에게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일본에서도 대승선에 능한 스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돌사자의 울음이라니, 꽉 막혔던 마음이 환해집니다" 고 고백했다.
동산혜일(東山慧日·1890∼1965)은 부처의 10대 제자 가운데 부루나에 비견되곤 했다. 부루나는 설법제일의 제자로 꼽혔다. 도리를 분별하는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동산의 설법은 감로수였다. 무엇보다 쉬웠다. 그러니 동산이 머물던 금정산 범어사 동구에는 법시(法施)에 목말라 하는 납자와 불자들의 발길이 멈출 날이 없었다.
"북송의 연수(延壽)선사는 만일 심장과 간을 도려내도 목석과 같이 아무렇지 않은 사람은 고기를 먹어도 괜찮다고 말했는데, 정말 그래도 되는 겁니까."
"그러니 먹지 말라는 거야."
"술을 마시되, 오줌 똥을 먹는 것처럼 여기는 대중은 먹어도 된다고 했는데요."
"그러니 마시지 말라는 거지."
"미인을 시체나 다름없이 여기는 대중은 음행을 해도 된다고 했는데요."
"그러니 음행을 하지 말라는 거지."
"걸림이 없는 대중은 어떤 일에도 구애됨이 없다는 뜻 아닌가요."
"딱도 하구나! 걸림이 없는 경지에 이르면 술 고기 여자를 취하지 않는 법이지. 걸림이 없는 경지에 이르지 못한 범부가 이를 취하지 말아야 함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동산의 가르침은 자상했다. 수행자는 자안애어(慈顔愛語)를 갖춰야 한다. 자비로운 얼굴과 사랑이 담긴 말이 최상의 공양이다. 동산은 그런 수행자였다. "몸이 고달프다고 중이 어떻게 청을 거절할 수가 있는가." 노구에도 불구하고 법문을 요청하는 데가 있으면 외면하지 않았다. 스승복도 참으로 많았다. 한글연구의 태두 주시경, 당대의 고승 용성과 한암. 이들의 가르침은 흔들리지 않는 좌표가 됐다. 초등학교 은사 주시경은 민족혼을 심어주었다. 이민족 지배의 시대적 상황에서 고뇌하던 동산은 용성과의 만남을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용성은 그의 인생행로를 인술의 길에서 구도의 길로 바꿔놓는다. 선문에 들어선 이후 동산은 한암도 사사, 경전을 보는 눈까지 기른다. 동산은 훗날 구도의 여정에 나선 후학들에게 무엇보다 좋은 스승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수행자는 계행을 깨끗이 해야 한다. 더러 계를 우습게 알고 불조의 말씀을 믿지 않는 이가 있다. 계란 별 것이 아니다. 어리석어서 잃어버렸던 내 마음을 다시 찾는 것이다."
동산의 지계(持戒)정신은 해마다 범어사 금강계단에서 활짝 꽃피운다. 조계종은 동산의 유지를 기려 수계의식을 금강계단에서 거행한다. 금강계단의 전통은 1936년 동산이 용성의 법인(法印)을 이어 받으면서 시작됐다. 신라의 고승 원효의 옥인은 법인의 상징이었다. 옥인은 원효암에서 수행을 하던 동산이 옛 절터에서 발견한 것이다. 옥인에는 '長大敎網 人天之魚(장대교망 인천지어)의 여덟 글자가 씌어져 있었다. 큰 가르침의 그물을 펼쳐 세상과 천상의 고기를 건진다는 뜻이다. 원효가 즐겨 읽은 화엄경의 구절이다. 당시 민족지사로 우리 문화재에 탁월한 안목을 갖고 있던 오세창은 원효의 옥인임을 확인했다. 고모부인 오세창은 동산에게 용성을 소개, 출가의 인연을 맺게 했다. 동산은 또 하나의 전통을 계승했다. 지리산 칠불선원의 계맥이다. 동산의 지계정신은 종단의 수행기강을 바로잡는 밑거름이 됐다.
"어느 곳을 향해 가느냐?"
"부처가 없는 곳을 향해 간다."
"어디가 부처가 없는 곳이냐."
"머리를 돌이켜 흰 갈매기에게 물어보아라." 동산의 자문자답 식의 법문이다. 정휴스님(구미 해운사주지)은 "이 법문은 화두의 기능을 지니고 있다. 화두는 오도적 도구다. 노사는 화두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오도적 도구를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아마도 동산의 이런 법문은 그의 깨달음의 과정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동산의 사상과 정신은 오늘날 범어사를 중심으로 동산가풍을 일궜으니 곧 범어문중이다.
동산은 입적 당일 아침에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법당 뜰을 청소했다. 국토를 깨끗이 하는 것이 곧 마음을 맑게 하는 수행이라는 신념을 마지막까지 버리지 않았다.
"큰 법당이 무너졌구나. 어두운 밤에 횃불이 꺼졌구나. 어린 아이들만 남겨두고 우리 어머니는 돌아가셨구나…."훗날 종정에 오른 청담은 이렇게 애도했다.
이기창 편집위원 lkc@hk.co.kr
● 연보
1890.2.25. 충북 단양출생, 속성은 진주 하(河)씨
1913 경성의학전문학교 수료, 범어사에서 출가
법호는 동산, 휘는 혜일
1927.8 대오(大悟)
1935 범어사 조실
1936 용성의 칠불계맥 전수
1958 조계종 종정
1965.4.24. 범어사에서 세수 75, 법랍 52세로 입적
그리고 그린 것이 그 몇 해던가(畵來畵去幾多年·화래화거기다년)
붓끝이 닿는 곳에 살아 있는 고양이로다(筆頭落處活猫兒·필두낙처활묘아)
하루종일 창 앞에서 늘어지게 잠을 자고(盡日窓前滿面睡·진일창전만면수)
밤이 되면 예전처럼 늙은 쥐를 잡는다(夜來依舊捉老鼠·야래의구착노서)
가슴 깊이 드리워져 있던 미혹(迷惑)의 장막을 거둬낸 순간을 동산은 이렇게 노래했다. 동산은 금어선원 주위의 대나무숲을 거닐다가 바람이 희롱하는 댓잎소리를 듣고 홀연 대오했다. 의식은 순간순간 일어났다가 꺼진다. 체험이 순간적일 수 밖에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깨달음 역시 찰나에 이뤄진다. '홀연(문득) 깨달았다'는 선가의 표현은 그런 체험의 반영이다.
동산의 진여(眞如·절대진리) 체험은 아주 독특하다. 무정설법(無情說法)의 뗏목을 타고 반야의 언덕에 다 달았다. 댓잎소리에서 반야의 설법을 들은 것이다. 이렇게 자연이 절대진리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을 무정설법이라고 한다. 동산의 댓잎처럼 돌멩이 구르는 소리나 풍경소리도 훌륭한 깨달음의 도구가 된다.
사람들은 여기서 의문을 품을 것이다. 어떻게 바람에 스치는 댓잎소리에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느냐고. 그런 경지에 들어간 사람이 아니고는 이해할 길이 없다. 애당초 언설과 문자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경지니까. 이렇게 이해할 수는 있을 것이다. 불교의 유식(唯識)에서 인식은 오류라고 가르친다. 분별은 예외 없이 진리에서 영원히 벗어나는 결과를 가져온다. 분별이 끊어진 상황이 무심이다. 댓잎소리는 동산의 분별심을 앗아가는 매개로 작용했다. 무심이 되는 순간 댓잎소리는 동산에게 절대진리로 다가선 것이다.
중국 당시대의 선사 영운(靈雲)은 복사꽃을 보고 대오의 인연을 맺는다. 영운은 오늘날까지 한국의 사찰에도 심검당(尋劍堂)의 이름으로 살아 있다. 심검당은 무명을 단 칼에 베어낼 지혜의 검을 찾아 그토록 오랜 세월을 방황한 그의 수행과정을 상징한다.
깨달음은 시간과 공간의 초월을 동반한다. 시간과 공간에 매여 있는 사람이 시공을 뛰어넘는 순간 삼라만상의 현상도 달라진다. 그 때에는 꽃을 본다든지 소리를 듣는다든지 하는 것이 바로 진리를 맞이하는 깨달음으로 귀결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