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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虎視牛行 흉내"에 짓밟히는 잡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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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虎視牛行 흉내"에 짓밟히는 잡초

입력
2003.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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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들에 꽃피는데 꽃피는 봄날인데/ 아! 말 달리던 때는 저만치 흘러가고/ 지금은 소걸음의 때/ 호랑이 같은 눈으로 앞날을 뚫어보고/ 소걸음처럼 견고하게 나아가리.' 시 '소걸음의 때'에서 박노해는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다. '우리는 모두가 어깨를 펴고 고개를 쳐들고 이를 악물고, 호랑이처럼 앞을 내다보며 소처럼 한 걸음 한 걸음 단단히 땅을 밟아가면서 걸어 나가야 한다.' 1998년 초 한 일간지에 실린 글에서 홍사중은 호시우행(虎視牛行)을 우리에게 호소했다.사람은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 자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겸손하여 호랑이나 소를 스승으로 삼고자 한다. 새를 본받아 날고 싶은 욕망을 비행기를 만들어 성취했다. '플레이 스타일이 매치 플레이에 딱 들어 맞는데다 돈내기에는 동물적 감각을 지니고 있다'면서 이성(理性)보다는 '동물적 본능'을 칭찬한다. 그런가 하면 '개가 용상에 앉은 격', '굼뜬 곰 같은 녀석'처럼 동물을 들먹이며 남을 비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미련하다는 곰이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거나, 잠 잘 줄 알았던 토끼가 거북이보다 훨씬 먼저 목적지에 도달하는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란다. 인고의 세월을 견딘 베짱이는 올 여름에도 애꿎은 욕을 먹으면서 더욱 슬피 울지 모르겠다.

개미들이 정말 열심히 일만 하는지 자세히 살펴 보았더니, 무리 중에서 20% 정도만 열심이고 나머지 80%는 괜히 돌아다니기만 하더란다. 그래서 일에 열심인 20%만 골라 놓았더니, 다시 그 중에서 20%만 일하고 나머지는 빈둥거리더란다. 바로 이것이 자연생태계 실상의 단면이다.

요즘 새삼스럽게 생태계를 본받자는 것이 유행처럼 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생태계에는 지도자가 없다. 굳이 찾자면 '보이지 않는 손'이 진화를 지휘할 뿐이다. 생태계에서는 이기심을 앞세운 무수한 종들의 생존경쟁이 극심하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의 결과는 승패가 아니라 다양화에 의한 공존이다. 무수한 잡초와 더불어 산다. 무슨 토론을 벌인 일도 없지만, 나무들은 한 날 한 시에 다투어 꽃을 피우지 않는다. 이른바 윈윈(win-win) 전략을 구사한다. 최근의 자연농법에서도 잡초를 뽑아버리지 않는다. 하지만 생태계의 이해에 어설펐던 히틀러는 유태인의 학살에 나섰다.

우행순추(禹行舜趨)란 말이 있다. 호시우행한다면서 호시탐탐 엉뚱한 곳만 보고, 겉으로만 소걸음을 흉내 내다가 애꿎은 잡초만 짓밟는 모습도 보게 되는 것이 우리네 세상인 것 같다.

조 영 일 연세대 화공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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