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과 전국 평검사의 대화 이후 항간에는 특정인이나 집단의 비상식적 언행을 빗댄 '∼스럽다'는 신조어가 나돌고 있다. 이를 원용해 이전투구와 날치기 따위의 행태를 '국회스럽다'고 한다면 그 말은 이제 '방송위원회스럽다'로 바꿔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1기 방송위원 임기가 만료된 지 석 달 만에 가까스로 구성된 2기 방송위가 '부위원장 날치기 선임 논란'으로 출발부터 내홍에 휩싸였다. 10일 오후 열린 방송위 첫 전체회의는 부위원장 자리를 놓고 서로 '내 몫'을 주장하는 여야 추천 위원들간의 말싸움으로 얼룩졌다. 급기야 양휘부 박준영 윤종보씨 등 한나라당 추천 위원 3명이 퇴장했고, 나머지 위원들은 '예정대로' 민주당이 추천한 이효성 성균관대 교수를 부위원장으로 선출했다. 방송위는 13일 다시 전체회의를 열어 상임위원 3명을 호선할 예정이지만 양측의 감정 싸움으로 보아 회의 속개 자체가 불투명한 상태다.
멱살잡이만 없었을 뿐 고성이 난무하고, 힘으로 안 된다고 회의석상을 박차고 나오고, 기다렸다는 듯 안건을 처리하고, '장외' 비방전을 펼치는 등 국회에서 수없이 보아온 작태가 고스란히 방송위에서 재연됐다. 이를 두고 방송가에는 "아무리 방송위가 정치권의 갈라먹기 산물이라지만 초장부터 국회의 나쁜 모습만 골라서 흉내낼 수 있느냐"는 비난의 소리가 무성하다.
더욱이 2기 방송위는 전문성과 독립성 결여로 노조와 시민단체 등의 거센 반발에 직면해 있다. 이 때문에 12일 첫 출근한 노성대 위원장과 이효성 부위원장은 노조원들의 출근저지 투쟁으로 집무실에 들어가지 못한 채 회의실에서 어설프게 실·국장과의 상견례를 가져야 했다.
방송위가 할 일은 많다. 디지털방송 정책, 지상파 재송신 논란을 비롯한 업계간 이해조정 등 현안은 물론 코 앞에 닥친 KBS 이사 추천 등 방송계 인사가 줄을 서 있다. 방송위가 민생 현안을 쌓아둔 채 당리당략에 급급한 국회의 복사판이 될까 걱정이다.
이희정 문화부 기자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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