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서울 면목동에 위치한 중랑 노인 복지관 2층 컴퓨터 실. 노인들을 위한 홈페이지 제작 강좌가 열리고 있다. 키보드와 마우스를 조작하며 개인 홈페이지에 게시판 메뉴를 만들어 붙이는 할아버지 할머니 20여명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이곳 사회복지사 최정아(28)씨는 "모두 인터넷 중·고급반까지 수료한 분들로 일부는 '하이레벨' 반에서 고급 PC활용법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대통령 선거 결과까지 뒤집었다는 인터넷의 힘이 이제 노년의 삶을 바꾸고 있다. 은퇴 후 생활을 한가하게 보내면서 자녀들의 무관심에 서러워 하던 노인들이 인터넷에서 새로운 재미를 찾고 있다. 특히 인터넷을 알면서 손주와 자녀들과의 의사 소통도 활발해져 가족관계까지 원만해졌다는 노인들이 많다.
PC에 능숙한 '올드 네티즌'들
자칭 '목동 올드 네티즌 1호'라는 김진수(66)씨는 아침에 일어나면 PC를 켜고 인터넷 뉴스를 확인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지난해 7월 근처의 구청 문화센터에서 PC와 인터넷을 배우면서 시작된 변화다. 처음에는 자판의 글자 찾기도 힘들었지만 이제 분당 200타 정도는 너끈하다.
활용능력도 많이 늘었다. 4남매가 매달 보내주는 용돈을 인터넷 뱅킹으로 관리한다. 무료할 때면 온라인 바둑을 즐긴다. 손주의 어린이날 선물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샀다. 하드 드라이브나 램 교환 같은 PC 업그레이드도 척척 해낸다. 여간한 젊은이보다 나은 '컴도사'인 셈이다.
김씨는 "요즘 신식 할아버지 소리 들으려면 이 정도는 기본"이라며 "문화센터 영감들 사이에도 인터넷 열풍이 불어 컴맹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인터넷으로 세상과의 교류 넓어져
컴퓨터를 배운 노인들은 사람들과 만남의 폭이 넓어진 것을 가장 큰 변화로 꼽는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낯 모르는 사람들과 필담을 주고 받고, 컴퓨터를 함께 배운 동문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메신저도 주고 받는다.
서울 사당동에 사는 임춘실(64)씨는 하이텔 노인 동호회 '원로방' 등 몇몇 인터넷 동호회를 통해 친구들이 많이 늘었다. 그는 "늙은이들이야 활동 폭이 좁으니 다양한 사람 만날 기회가 없지. 요즘은 멀리 있는 네티즌 할아버지들과 채팅도 하고, 가끔 시내에서 번개모임도 가진다"고 전했다.
인터넷을 알고 나서는 컴퓨터에 푹 빠진 손자들과도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늘었다. 중랑구 노인복지관의 한 할아버지는 "할애비는 못 본 채 컴퓨터에만 매달리는 손주 놈이 참 섭섭했었다"면서 "이제는 서로 이메일도 교환하고, 같이 인터넷 게임도 하니 정말 즐겁다"고 말했다.
노인복지의 중요한 일부로
노인들의 인터넷 학습이 좋은 효과를 거두자 정부도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 정통부는 올해 10억원의 예산으로 노인 복지관, 실버넷 운동 참여 대학, 우체국 등 전국 220여 곳에 교육장을 마련해 55세 이상 노인 4만명에게 무료 정보화교육을 실시 중이다.
정통부 정보화기획실의 황선철 사무관은 "지난 3년간 11만명의 노인에게 정보화 교육을 해 고령층 인터넷 이용률이 2000년 5.7%에서 지난해 9.3%로 높아졌다"고 말했다.
노인 전문 컴퓨터 강사인 조수진(31)씨는 "무기력하고 의기소침하던 노인들이 인터넷을 배우면서 조금씩 활기를 찾는 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며 "인터넷은 이제 노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필수품"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정철환기자 ploma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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