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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에 주름 가득해도 우리 영감·할멈이 최고지"/결혼 60년 40쌍 장수촌 구례서 합동 회혼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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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에 주름 가득해도 우리 영감·할멈이 최고지"/결혼 60년 40쌍 장수촌 구례서 합동 회혼례

입력
2003.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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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할망구가 됐지만 시방 내 눈엔 각시랑께.""아무리 쳐다봐도 우리 영감만한 신랑은 없당께."

9일 오전 11시30분 전남 구례군 구례읍 서시천 체육공원. 60여년 만에 사모관대와 족두리를 다시 쓴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마치 처음 혼례를 치르는 것처럼 마냥 들떠있었다. 이들은 올해로 결혼 60년을 넘긴 40쌍의 군내 장수부부. 군에서 가정의 달을 맞아 마련한 결혼 60주년 기념 합동 회혼례에 초대된 주인공들이다. 결혼 60년이 넘는 잉꼬 노부부는 83쌍이나 됐지만 다른 부부는 몸이 불편해 참석하지 못했다.

결혼한 지 60년이 넘는 세월의 켜로 인해 주름살이 깊게 팼지만 설렘은 어쩔 수 없었다. 환갑을 넘긴 자식들의 인사를 받으며 혼례마당에 선 이들은 왁자하게 얘기 꽃을 피우다 "신부사배(新婦四拜)" "신랑재배(新郞再拜)"의 우렁찬 소리와 함께 혼례가 시작되자 금세 숙연해졌다.

만혼 등 사회적 여건 변화로 찾아보기 힘든 회혼이 한 군에서만 수십 쌍이나 나온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회갑만 맞아도 잔치를 벌였던 조선시대의 회혼례는 온 동네를 떠들썩하게 했던 큰 행사였다. 벼슬아치에겐 임금이 하사품을 내렸고 일반 백성들도 이날 만큼은 직접 찾아온 고을 수령의 축하인사를 받았을 정도다.

합동 회혼례의 최장수 부부는 결혼한 지 77년 된 장두흠(94) 할아버지와 이사순(92) 할머니. 광의면 지천리에서 큰 며느리와 함께 살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슬하에 30명의 자손을 두고 있다.

장 할아버지 부부는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낙천적으로 살다 보니 장수를 하는 것 같다"며 "1926년에 혼례를 치렀는데 다시 사모관대와 족두리를 하고 맞절을 하니 새색시, 새 신랑이 된 기분"이라고 흥겨워 했다. 손자 영주(42·서울 구로구 고척동)씨는 "두 분이 싸우시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금슬이 좋았다"며 "나도 앞으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결혼생활을 본받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전통혼례로 치러진 식에서 할아버지 신랑들은 시종 '씩씩함'을 잃지 않으려고 애를 썼고, 연지곤지를 곱게 찍어 바른 할머니들은 애써 웃으며 수줍음을 달랬다. 그러나 신랑이 신부를 맞이하는 근례나 맞절에서 서투른 몸짓으로 실수를 연발할 때는 하객들과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신랑과 신부가 하나됨을 선언하는 합근례. 청실과 홍실을 늘어뜨린 표주박 잔에 술을 담아 노부부들이 입을 대는 순간 2,000여명의 하객들로부터 우레 같은 축하박수가 터져 나왔고, 이어 60살이 넘은 자녀들이 대례상 앞에서 노부모들에게 응석과 어리광을 부리며 회혼을 축하했다.

올해 회혼을 맞은 오중원(77) 할아버지는 "다 큰 자식들이 부모 앞에서 재롱을 부리는 모습을 보니 무척 기쁘다"며 "마누라와 한 번 부부싸움을 해보는 게 평생 소원"이라며 부인에 대한 애틋한 정을 나타냈다.

국내에서 이런 대규모 합동 회혼례가 열리기는 처음인데, 구례는 예부터 장수마을로 알려진 곳이다.

/구례=안경호기자 khan@hk.co.kr

사진 최흥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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