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를 해야 할 의무는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저도 그냥 기분 좋으니깐 그 맛에 했던 거죠. 근데 괜히 제가 뒤늦게 욕심을 부려 100인 릴레이라는 이름을 망쳐놓은 것은 아닌가요?"한국일보가 가정의 달을 맞아 여성재단과 함께 하는 '딸들을 위한 100인 기부 릴레이'의 102번째 '이끔이'로 이름을 올린 가수 조영남(59)씨는 8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자택에서 기자를 반갑게 맞으며 특유의 너털웃음을 지었다.
100인의 첫 주자들로 시작, 5월1일부터 31일까지 매일 바통을 이어가 각 줄 31명이 완성되는 기부 릴레이는 첫 주자인 '이끔이'로 참가하고 싶다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삼성생명 이수빈 회장이 101번, 조씨가 102번 주자로 이름을 더했다.
조씨에게 릴레이 참가를 권한 사람은 역시 '이끔이'로 뛰고 있는 한국소비자연맹 정광모(73) 회장. "5월 초 정 회장을 만났더니 이번 행사에 굉장히 고무돼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설명과 해석이 끊임없이 이어졌죠. '알았다. 뜻을 충분히 이해했다'고 말을 중단시켜야 할 정도였습니다. 제가 평소에 '나의 가장 나이 많은 여자친구'라고 부를 정도로 너무나 좋아하는 분이 그렇게 열성을 보이는 일에 어떻게 마다할 수 있겠습니까. 처음에는 릴레이주자중의 한 사람이 될 생각이었으나 기왕이면 제대로 하자는 생각에 '반칙'으로 102번째 이끔이가 됐죠."
조씨는 그날로 평소 절친한 사이로 지내던 카피라이터 최윤희씨에게 바통을 넘겼다. 최씨 역시 흔쾌히 승낙해 줄을 이어가고 있다. 조씨는 소위 '공인' 취급받는 연예인 생활을 시작한 직후부터 기부라는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공인으로서 누리는 혜택이 많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오래도록 저를 억눌렀죠. 지금 중학교 2학년 된 딸아이를 입양했던 것도 그런 고민의 결과였습니다."
이미 20여 차례의 전시를 통해 전문가 못지 않은 그림 솜씨를 입증한 조씨는 10일부터 29일까지 과천 '제비울 미술관'에서 태극기를 주제로 한 작품을 모아 '대∼한민국 태극기'전을 연다.
"저 사실 우리나라 태극기와 애국가에 대해 불만 많습니다. 태극기는 색상이나 모양새가 촌스럽고 애국가의 멜로디는 구태의연할 뿐 아무 감동도 주지 않아요. 이런 불만을 갖는다는 게 나라를 사랑한다는 뜻일 수도 있지만."
미적으로 불안하다고 느껴지는 태극기를 아름답고 예쁘고 보기 좋게 그려보려는 욕심에 시작한 태극기 작업도 벌써 30년이 지났다. 태극기의 모양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 통념 때문에 100여개가 넘는 태극기 작품들은 집에 차곡차곡 쌓여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작년 월드컵 때 태극기가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고 조씨는 '이제야 내 태극기들이 빛을 보겠군' 하는 느낌이 왔다고 한다.
"미국 작가 야스퍼 존스가 성조기를 주제로 작업을 한 후 아무도 국기를 활용한 작품을 하지 않았습니다. 미술계에서 '아류'라는 평은 최악으로 여겨지거든요. 뭐, 저는 상관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아마추어잖아요, 아마추어… 하하하."
자유롭게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고 싶어 아마추어임을 끊임없이 주위에 상기시킨다는 조씨는 인터뷰 중에도 쉴새 없이 붓을 놀리며 또 하나의 태극기를 그려 나갔다.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사진 김주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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