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는 증시에는 안 오고, 말리는 부동산에는 몰리고…"금리 하락에도 불구하고 시중 부동자금이 증시로 유입되기 보다는 은행에 묶여 있거나 오히려 부동산과 국공채 등 안전자산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은행 단기 예금 수탁액은 갈수록 불어나고, 부동산과 국공채 시장은 과열을 우려할 만큼 달아오르는 반면 증시에서는 오히려 돈이 빠져나가 고객예탁금과 주식형 펀드 설정액이 감소하고 있다. 경기 회복에 대한 확신과 국내외 악재가 해소되지 않는 한 5월 금리를 추가 인하하더라도 증시 자금 유입에 의한 '유동성 장세' 기대는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많다.
8일 증권업협회와 투자신탁업계에 따르면 투자자들이 주식을 사기 위해 증권사에 일시적으로 맡겨놓는 고객예탁금은 지난달 중순 11조원대를 넘어섰으나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해 이달 2일 9조8,736억원으로 줄었다.
주식형 펀드 설정액도 정체상태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14일 10조8,000억원을 넘었던 설정액은 최근 10조6,000억원에 머물고 있다. 투신사들의 머니마켓펀드(MMF)자금도 4월초 38조8,560억원이었으나 이달 2일 35조4,900억원으로 감소, 3월 환매 사태에 이어 한 달 만에 3조원 넘게 추가로 빠져나갔다.
개인들은 최근 증시 반등에도 불구하고 5일 연속 거래소시장에서 주식을 순매도해 지난달 29일 이후 1조원가량(9,827억원)을 팔아치웠다. 같은 기간 외국인들이 5,664억원을 순매수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증권·투신운용사들이 시중 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야심차게 추진한 주가연계증권(ELS)상품 판매도 기대에 못미치고 있다. 증권사들이 지난달 계획한 ELS공모분 가운데 납입을 마감한 23건의 ELS는 공모 예정 규모가 1조2,625억원이었으나 청약 결과 3,017억원만 들어와 청약비율이 평균 23.9%에 그쳤다.
반면 은행권과 부동산·국공채 시장 등으로는 갈수록 자금이 몰리고 있다. 은행들의 잇따른 예금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4월 한달 동안 은행 수신은 단기성 예금상품인 수시입출식예금(MMDA)을 중심으로 7조7,000억원 이상 증가했다.
SK글로벌사태 이후 회사채와 금융채 투자는 꺼리는 대신 국공채 등 안전한 채권에 수요가 몰리면서 국공채 유통수익률(금리)은 하락하고 채권 가격은 치솟고 있다. 이달 7일 채권시장에서 3년 만기 국고채 수익률은 연 4.39%를 기록, 연중 최저치를 기록하며 4.3%대에 들어섰다. 지난달 은행들의 고유계정 자산 운용현황을 보면 회사채가 1,615억원 줄고 수익증권도 1조1,305억원 감소했지만 국채는 3,716억원이나 증가했다.
개인들이 증시 대신 부동산시장을 기웃거리면서 경기 둔화와 정부의 강력한 투기억제책에도 불구하고 동시분양 아파트와 주상복합, 재건축아파트, 신도시 예정지역 청약시장은 과열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SK사태와 북한 핵 문제 등으로 투신권의 MMF와 증시에서 빠져나온 돈이 은행권으로 이동했다가 다시 부동산 시장으로 몰리고 있는 셈이다.
교보증권 이민구 연구원은 "금리가 낮아지면서 최근 시중 자금은 안전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추구하면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며 "회사채와 주식의 메리트가 사라지면서 보험·부동산등으로 이동했거나 아파트 청약시장 등에서 대기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시중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유입돼 증시가 뜨기보다는 각종 리스크가 해소되고 주가가 올라 수익을 낸다는 신호가 나와야 돈이 본격적으로 증시로 이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호섭기자 dre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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