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나는 유혹 받고 있다. 그러나 그 유혹은 한없이 달콤하다." 세속인도 아닌 출가 수도승이 '유혹'(북로드 발행)이란 제목의 책을 냈다. 세속의 욕망을 버린, 잿빛 옷을 입은 지 십수 년이 된 40대 스님을 유혹하는 것은 '산과 바람과 도반의 그리움'이란 부제 그대로였다.서울 홍은동 북한산 남쪽 끝에 자리잡은 옥천암. 주변은 도심이나 다를 바 없지만 성전(惺全) 스님의 방에 걸린 '홍엽산거(紅葉山居)'란 추사 김정희의 글이 주인의 심경을 전한다. "산에 기대어 살고 싶어 걸어두었을 뿐이죠."그가 이 암자에서 주지로 보낸 4년간 하늘과 바람과 꽃과 영원에 유혹당하는 마음을 틈틈이 적어 둔 것이 책이 됐다.
출가한지 얼마 안된 강원 시절, 그를 유혹한 것은 창호지를 선명하게 물들이던 달빛이었다. 누워서 창살에 어린 달빛을 가만히 바라보다 두고 온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면 달빛을 받으며 산길을 걸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혼자 지내면서 많은 것들과 친구가 됐죠. 외로울 때는 바람을 찾아 길을 떠나고, 우울한 날에는 하늘을 바라보고, 답답한 날에는 걸망을 챙겨 바다를 향해 길을 떠났지요."
유혹들 중에 가장 강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바람이죠. 바람만 불면 설렙니다. 아마도 전생에 바람이었나 봐요." 그래서 스님은 오랜 행각으로 바람의 내음을 전하는 스님들에게서 수행자의 참모습을 본다고 했다. 자가용이 일반화된 절집에서도 걸망을 메고 버스를 타고 다니는 스님, 전화도 없는 외딴 농막에서 홀로 살며 수행하는 스님, 슬픔도 두려움의 기색도 없이 "나 이제 갈라네" 한 마디 던지고 입적한 노스님 같이 옛 모습을 그대로 지닌 스님들에게 그는 유혹당한다고 했다.
그가 유혹당하는 것은 세상의 거센 시류에 밀려 출세간의 세계에서도 출가자의 향기를 맡기 어렵게 된 탓인 듯 했다. "옛 스님들이 지녔던 탈속의 자유로움, 무소유의 즐거움이 이제는 전설이 되고만 것 같아요. 그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가 않아요."
그는 '유혹'이 구도의 분기점이라고 했다. "구도의 과정에서는 부처님 말씀만이 아니고 하늘, 구름, 처마에 달린 풍경 소리 하나도 의미가 있어요. 자연은 여과지와 같아요. 욕망에서 욕망이 없는 자리로, 번뇌의 자리에서 번뇌가 없는 곳으로 건너가게 해주지요."
"가끔 사람들을 만나면 모두 사는 것이 답답하다고 하지요. 누구는 돈 때문에, 누구는 자식 때문에, 누구는 승진 때문에. 그럴 때면 언제나 떠나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 전부였던 세상사가 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이렇게 우리들을 유혹한 그는 며칠 후면 주지 일을 끝내고 도반이 있는 산으로 떠난다. 성전 스님은 1988년 태안사에서 출가, 해인사 강원을 졸업하고 월간 '해인'과 '선우도량'편집장을 지내며 잔잔하고 서정적인 글을 선보였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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