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의 A할머니는 최근 시골의 논밭과 집을 모두 팔고 상경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대학공부까지 시킨 큰아들이 상경을 권유했기 때문. 그러나 서울에 온 지 얼마 안돼 고부갈등이 불거지자 아들이 집을 나가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할머니의 전 재산은 아들에게 넘어간 뒤였다. A할머니는 지금 서울 변두리에 월셋방을 얻어 고물을 주워 팔며 혼자 근근히 연명하고 있다.자식이 부모를 홀대하거나 무시하던 종전의 단순학대 현상대신 부동산 상속이나 퇴직연금 대여를 요구하는 '경제적 학대'가 증가하고 있다.
7일 까리따스 노인학대 상담센터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접수된 노인학대 신고는 모두 427건. 이는 지난 해 같은 기간의 117건에 비해 4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특히 상속을 둘러싼 경제적 학대가 급증했다.
조사에 따르면 부모의 재산을 착취하는 '경제적 학대'가 75건, 기본적인 의식주를 제공하지 않는 '방임'이 162건 등으로 전체 신고 건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특히 토지나 집 등 명의 이전을 통해 상속 절차를 마친 뒤 곧 바로 부양을 포기, 금전 문제로 인한 가족 갈등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강압이나 폭행, 협박 사례도 빈발하고 있다. 서울 광진구에 사는 김모(67)씨는 수개월간 자신의 유일한 재산인 집과 토지 등의 소유권을 이전해달라는 딸과 사위의 요구를 거절했다가 폭언 및 폭행을 당했다고 노인학대 상담센터에 신고하기도 했다.
경제적 학대를 받는 노인들은 대부분 가정법원에 부양비 청구소송 또는 재산반환청구소송을 내지 않고 "그래도 자식인데"라는 심정으로 자식의 허물을 덮거나 소송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노인학대 상담센터 은보경(43) 간사는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경제적 학대를 받은 노인이 부양비 청구 소송을 벌여 승소한 경우가 없다"며 "대부분 노인들이 자식의 허물을 덮거나 경제적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소송비 부담 등으로 지레 포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학대받는 노인들은 편히 쉴 곳조차 없고, 자녀가 있는 경우 기초생활보호대상자에도 포함되지 않아 학대를 감수하면서 다시 자녀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
한국노인복지회 김은주(37) 상담원은 "노인들의 인권의식이 향상돼 적극적인 신고가 늘었지만 이 중 경제적 학대 및 방임이 크게 증가하는 양상"이라며 "이미 경제적 능력을 박탈당한 노인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서 학대가 재발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박은형기자 voi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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