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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카드 형사콤비 정진영 양동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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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카드 형사콤비 정진영 양동근

입력
2003.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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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화 차림의 정진영이 먼저 나타났고, 조금 있다가 슬리퍼를 끌고 트레이닝복 하의 차림의 양동근이 들어왔다. "어제 내가 전화할 때 뭐하고 있었니?" 정진영(39)이 다정스레 물어보자 양동근(24)은 "새벽까지 농구했죠"라며 두런두런 간밤의 일을 이야기한다. 열 다섯 살 차이면 삼촌과 조카 뻘. 영화 '와일드 카드'(16일 개봉)로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과묵한 편인 두 사람은 오래 사귄 고향 선후배처럼 수다를 늘어놓는다. 영화 속 날선 눈동자로 흉악범을 뒤쫓던 강력반 형사들 같아 보이지 않는다.영화를 찍으면서 어떤 화학 작용이 일어난 것일까. 양동근 말대로라면 "해가 뜰 때까지 술을 마신" 탓이고 정진영 말대로라면 "광적으로 마신" 까닭이다. 이럴 줄 알고 김유진(53) 감독은 두 사람을 처음으로 만나게 한 걸까. 그러나 촬영 초반 김 감독은 말수 적은 두 사람 때문에 답답해 했다고 한다. "내가 이 나이에 재롱 떨어야 돼?" 감식반 형사 역을 맡은 한채영의 '증언'도 마찬가지. "두 사람 다 말이 없고 뭘 물어도 단답식이어서 외로웠어요."

강력 3반, 환상의 복식조

두 사람은 강남서 강력 3반이 자랑하는 비장의 카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의문의 연쇄 살인 사건에 이들 환상의 복식조가 투입된다. 야구방망이로 범인의 차량을 박살 내고, 반장의 생일에 허리를 90도로 꺾으며 "형님, 만수무강하십쇼!" 하고 인사하는 모습을 보면 조폭과 구분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들에겐 범인을 압도하는 폭발적 열정이 있다.

양동근이 역을 맡은 방제수는 경찰 초년병으로 강력반에 들어온 지 6개월밖에 안된 신참 형사. 그러나 게으른 선배에게는 "언제까지 묻어갈 거야?" 라고 닦달하고, 선배들이 피의자를 다그치면 "어떤 시대인데 주먹을 휘두르며 일해?"라고 무안을 준다. 방제수의 파트너로, 신참 못지않은 열혈 형사 오영달(정진영)은 방제수의 객기에 "잡는 데도 규칙이 있고 절차가 있는 거야"라고 적당하게 브레이크를 건다. 이만한 짝패가 또 있을까.

형사 영화는 숱하게 많은데 이번 영화는 뭐가 좀 다르냐고 묻자 정진영은 "되게 진한 영화여서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다"고 말한다. 양동근은 주문한 크림 스파게티를 먹다 말고 미간을 좁히며 한참을 고민하더니 "시각적으로 확연히 다른 영화, 꾸미지 않고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 형사에 다가선 영화"라고 받는다. 하지만 둘 다 형사는 꿈에도 되고 싶지 않단다. 양동근은 엉뚱한 이유를 댔다. "저는 슬리퍼 신고 다니길 좋아하는데 형사는 운동화 신고 뛰어 다녀야 하잖아요." 정진영은 "마음이 약해서"라는 이유였다. "'약속' '달마야 놀자' 등에서 액션 배우처럼 비쳤지만 사실 전 액션 안 좋아해요."

형사의 애환

시트콤에서도 힙합 가수처럼 하고 다니던 양동근은 늘 자기 치수보다 큰 헐렁한 옷을 입고 다니다가 처음으로 자기 치수에 맞는 옷을 입고 촬영했다. "'네 멋대로 해라'에서의 소매치기도, 영화 속에서 소매치기를 잡는 형사도 다 저랑 맞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액션 영화는 다 좋아하지만…." 세상이 다 따분하다는 듯한 말투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그는 "다리에 쥐가 날 정도로 범인을 잡으러 뛰어다닌다." 나이 지긋한 용의자를 반말로 어르고 뺨치는 솜씨는 수준급. 반말로 하는 게 마음에 걸리지 않느냐고 했더니 한 손으로는 귀를 후비면서 작은 눈을 치켜 뜬다. "그럼, 범인한테 '왜 그러셨어요'라고 그러나요?" 마음에 안 맞는 선배들에게 대드는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했더니 모처럼 맞장구를 친다. "맞아요. 전 틀렸다 싶은 건 두고 보지 못해요. 그런 게 있는 거 같아요."

정진영은 조금은 들떠 있었다. "잘 생긴 영화가 나온 것"에 대한 기쁨을 그는 감추지 않았다. "형사의 애환을 특별히 얘기하지 않지만, 영화를 보니 그들의 애환이 뭉텅이로 다가오더라구요. 형사란 참 그로테스크한 걸 많이 접하는 직업이에요."

냅킨으로 종이배를 접던 양동근이 특유의 졸음기 가득한 말투로 물었다. "그로테스크가 뭐예요?" "괴기스럽다는 말인데, 엽기적이라고도 하지…." 졸음기 가득한 양동근의 눈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이종도기자 ecri@hk.co.kr

●정진영

1996년 ‘초록 물고기’에서 연출부 막내로 일하다가 한석규의 형 역으로 등장한 이후 ‘킬러들의 수다’에서 괴짜 검사로, ‘달마야 놀자’에서 무 시무시한 내공을 갖춘 청명 스님으로 점차 자신의 입지를 넓히더니 이제 영화를 책임지는 주연으로 우뚝 섰다.

양동근에게 보내는 편지

“난 네가 어린 배우인줄 알았지. 시트콤에서 본 이미지는 젊고 에너지 넘 치는 거였는데. 같이 지내고 보니까 어른스럽고 연기도 묵직하고 깊더구나 . 촬영을 같이 하면서 ‘요놈 대단한 놈이구나’ 하고 생각했단다. 신나게 젊음을 구가하면서 살고, 낯선 세상에 당황하지 말고, 나이를 먹을수록 세 상을 받아들이는 너의 마음이 더욱 넓어질 테니 두려워하지 말기를 바란다 .”

●양동근

1987년 아역 배우로 입문한 이후 지난해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로 자 신만의 연기 스타일을 선보이며 연기파 배우 대열에 들어섰다. 음반 2장을 낸 힙합 가수이기도 하다. 영화로는 ‘수취인 불명’ ‘해적 디스코왕 되 다’ 등이 있다.

정진영에게 보내는 편지

“형은 알면 알수록 기대고 싶은 사람이에요. 늘 남의 칭찬을 잘 하시잖아요. 칭찬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칭찬하는 것 같아요. 영화를 촬영할 때는제게 질풍노도의 시기이자 제일 중요한 시기였어요. 갈피를 못 잡았는데형의 좋은 얘기가 약이 됐죠. 일뿐만 아니라 가치관에도 많은 변화를 줬어요. 좋은 길로 이끌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행복하게 멋지게 사세요"

■영화속 형사는 '천의 얼굴'

‘투캅스’(1993)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공공의 적’(2002) ‘살인의 추억’(2003). 지난 10년 간 관객과 평단을 두루 만족시킨 형사 영화다. 이들은 부패 대 청렴(‘투캅스’), 시골 대 서울(살인의 추억) 등의구도로 형사 짝패를 내밀거나 파렴치범 못지않은 파렴치 형사(‘공공의 적’), 초인적 근성으로 사건에 달라붙는 형사(‘인정 사정…’)를 각각 내세워 걸작을 만들었다.

‘투캅스’의 안성기는 독실한 신앙과 가족 사랑, 깔끔한 옷차림 뒤로 잇속 차리기에 여념이 없는 대표적인 부패형. 경찰대를 수석 졸업한 뒤 원리원칙만을 고집하는 청렴형 박중훈은 곧 구악 선배 안성기를 능가하는 구악으로 큰다.

‘인정사정’에서의 박중훈은 입만 열면 욕설이고, 용의자를 ‘통닭구이’등 고문으로 괴롭히는 조폭형. 아내가 가출하고 집안이 난장판이 돼도 그는 악착 같이 범인(안성기) 검거에 나선다.

‘공공의 적’의 강철중(설경구) 형사는 부패형이면서도 악바리형. 수사중 압수한 마약을 팔러 다니던 그는 교통경찰로 좌천된 뒤에도 범인을 추적해 정의의 심판을 내리는 ‘더티 해리’형의 극치를 보여준다. 패륜아범인을 잡기 위해 서서히 미쳐 가는 강 형사의 광기는 ‘살인의 추억’의시골 형사 박두만(송강호)과 서울 형사 서태윤(김상경)의 광기와 견줄 만하다.

송강호와 김상경은 각각 8㎏을 늘리고 10㎏을 줄여서 얼굴만 봐도 범인을알아낸다는 ‘무당 눈깔’의 직관과 ‘서류는 거짓말 안 한다’는 신경질적이고도 세련된 형사 이미지를 보여 주였다. 이들은 1980년대 형사 캐릭터 구축은 물론 시대의 공기를 스크린 안으로 불어 넣었다는 평을 들었다.

‘와일드 카드’는 노트북은 기본이고, 원두커피를 즐겨 마시며, 고참에게도 할 소리는 다 하고, 짬 나는 대로 구애 작전에 나서는 신참 방제수(양동근) 형사와, 틈나는 대로 집에 가서 속옷을 갈아 입는 깔끔함과 손뼘으로 딸 아이의 크기를 재는 자상함을 겸비한 오영달(정진영) 경장을 통해많이 달라진 경찰상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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