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확장, 이라크전에 따른 중동정세 변화, 미군에 대한 주둔국의 부정적 여론 등이 전세계 미군편제를 개편하려는 미국 국방부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가 7일 보도했다.이 신문은 특히 나토의 동진은 구 소련의 위협이 사실상 소멸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미군 재편은 나토의 확장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전했다.
'럼스펠드 독트린'으로 불리는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군 개편안은 유럽, 특히 독일과 중동지역을 주 대상으로 한다. 독일은 하이델베르크에 미 유럽사령부 본부가 위치해 있고, 전체 유럽주둔 미군의 절반이 훨씬 넘는 약 8만명이 포진해 있다. 그러나 소련이라는 주적(主敵)이 사라진 지금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유럽을 보호한다는 독일의 전략적 가치는 크게 퇴색했다.
미국이 이라크전에 참전한 독일 주둔 제1기갑사단을 복귀시키지 않겠다는 것은 전쟁을 반대한 독일정부에 대한 대응일 수 있지만, 공산권의 위협이 없어진 마당에 굳이 독일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현실적 이유가 강하다.
미국이 독일의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는 불가리아의 흑해연안 부르가스 항이나 루마니아의 콘스탄차항은 걸프지역이나 카스피해로 통하는 코카서스로의 접근이 용이하다는 점에서 독일보다 전략적 가치가 더 크다고 국방부는 보고 있다.
독일이 나토의 변화에 따른 것이라면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쿠웨이트는 이라크전 종전에 따른 국제환경의 변화와 관계가 깊다. 미국이 이들 국가에 군대를 주둔시킨 것은 1991년 걸프전 이후 대 이라크 유엔 결의를 이행하고 감시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그러나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이상 이들 국가에 미군을 계속 머물게 할 명분이 없어졌다. 전쟁 와중에 반미여론도 높아졌다. 국방부는 사우디의 프린스 술탄 공군기지와 터키의 인시를리크 공군기지를 사실상 폐쇄한 데 이어 쿠웨이트에서도 조만간 대규모 병력철수를 발표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독일과 중동 만큼은 아니지만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미군개편 논의도 활발하다. 10만여명에 달하는 아시아 주둔 미군 중 가장 큰 변화가 예상되는 곳은 3만7,000명이 주둔하고 있는 한국과 4만5,000명이 있는 일본이다. 한국은 제2사단 등 한미연합사령부 전력을 한강 이남으로 옮기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비무장지대(DMZ) 미군 병력도 철수할 계획이다. 아직 병력감축은 논의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시아 주둔 미군을 동남아 지역으로 분산배치한다는 게 럼스펠드의 구상이어서 장기적으로 주한미군 감축은 불가피하다는 게 중론이다. 오키나와(沖繩)의 해병대가 주둔 미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일본의 경우 해병대와 해군을 호주 북부해안으로 재배치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아직 논의가 구체화하지는 않았지만 양국 정부가 10년 내 미군기지의 4분의 1을 일본정부에 반환키로 합의한 바 있어 어떤 형태로든 주일미군 편제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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