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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의 70·80년대 영화화 "바람"/"다시보자, 그때 그사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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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의 70·80년대 영화화 "바람"/"다시보자, 그때 그사건들"

입력
2003.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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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년간 한국 영화의 핵심 코드는 조폭과 섹스였다. 지난해 대형 블록버스터가 흥행에 참패하면서 충무로는 자금난에 봉착했고, 최근 제작비를 비교적 쉽게 확보한 영화는 인터넷 소설을 기반으로 한 10대 겨냥 영화나 조폭 코미디의 변주작이 대부분이다.그러나 최근 한국 영화가 역사 속으로 카메라를 들이대는 새로운 시도로 한 축을 옮기고 있다. '실미도'(감독 강우석)는 1971년 실미도를 탈출해 청와대로 향하려다가 대방동에서 진압된 북파 공작원 훈련병들을 소재로 한 영화. 68년 북한 124군부대가 청와대를 급습한 이른바 '김신조 사건'의 여파로 창설된 특수부대에서 훈련받은 요원들이 왜 북한이 아닌, 남한에 총구를 들이댈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역사적 의문을 온전한 남성 영화 스타일로 그려낼 예정이다. 안성기 설경구 허준호 등 굵직한 선의 배우들을 통해 이 사건을 처음으로 영화로 만든다. 인천에서 배로 20분 거리의 실미도에 15억 원 규모의 세트를 제작한 것을 비롯, 총 90여억 원을 들여 제작해 내년 설께 개봉할 예정이다.

80년대는 당분간 중요한 시대 배경이 될 전망이다. 최근 남성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 모은 '살인의 추억'이 86∼91년 발생한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으며, 영화 '나비'에서도 80년대 삼청교육대 사건이 영화의 주요 모티프로 등장한다.

'아이언 팜'의 육상효 감독도 85년 미 문화원 점거 농성 사건을 소재로 코미디 영화를 만들 예정이다. 중국요리점 배달원(철가방)이 우연하게 시국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사건을 그린 '구국의 강철대오'가 바로 그것이다. 육 감독은 함운경(39)씨 등 당시 사건의 주역들을 취재, 이미 시나리오 작업을 마친 상태이다.

'친구' '품행제로' '해적, 디스코왕 되다' '몽정기' 등 코미디 영화에서 주로 중고교를 배경으로 영화가 만들어졌던 것은 '민감한 80년대'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복고의 매력을 영화로 포장하기 위한 장치. 이제 한국 영화는 70·80년대를 직시하며 새로운 영화 스타일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이중 간첩'의 예상치 못한 흥행 부진이 증명하듯 역사적 사건을 비중 있게 다루면서 흥행까지 아우르기는 쉽지 않다. 자칫 시대의 분위기에 함몰돼 영화적 흥미가 반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감한 사건일수록 관련자들의 이해를 조율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실미도'의 강우석 감독은 실미도전우회, UDU, HID 등 사건의 직·간접 당사자들로부터 영화에 비쳐질 자신들의 모습에 대해 다양한 요구를 받고 있는 상황. '살인의 추억' 역시 화성시로부터 '화성'이라는 구체적 지명을 홍보 문안에 사용하지 말아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때문에 아예 '먼 옛날'의 역사적 사건을 코미디로 변주하는 것도 돌파구의 하나가 되고 있다. 4월 30일 첫 촬영에 들어간 '황산벌'(감독 이준익)은 백제 멸망의 도화선이 된 황산벌 전투를 시대 배경으로 한 역사 코미디물이다. 들판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치한 백제군과 신라군의 상황을 호남 사투리와 영남 사투리를 빌어 실감나게 표현함으로써 두 나라의 싸움을 정치적 패권싸움 뿐만 아니라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분석한다는 전략이다. 계백, 김유신 등 역사적 인물이 등장하지만 옛날 얘기를, 그것도 코미디로 변주한다는 점에서 후손들이 특별히 속상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게 영화사의 판단이다.

영화 속에서 펼쳐질 역사가 자꾸만 '코미디'로나 만들어지는 것은 아쉽지만 역사적 사건이 소재 한계에 부닥친 한국 영화의 보물 창고가 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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