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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백범의 "보수"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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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백범의 "보수"가 그립다

입력
2003.05.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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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4월 19일은 평양에서 '전조선정당사회단체 대표자연석회의'와 '남북조선제정당사회단체 지도자협의회' 등의 정치회담이 열린 날이다. 철저한 우파 보수주의자였던 백범 김구는 우남 이승만 주도의 남한단독정부 수립이 국토의 영구분단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초래할 것이라는 이유로 반대하면서 김일성을 만나기 위해 이 정치회담에 참석하였다.반세기 이상이 흘러 지난달 19일 '보수' 인사들이 개최한 집회에 등장한 연사들은 지난 김대중 정부와 현 노무현 정부를 북한과 협조하는 '반민주주의 빨갱이 정권'으로 부르며 비난하였고, 단상 아래에는 '김정일의 공작원 김대중', '간첩 김대중 처벌'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이 어지러웠다. 그리고 지난 2일 국회에서 김용갑 의원은 현 정권이 '조선노동당의 본부중대'이며 '굴북정권(屈北政權)'이라고 비난하여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보수와 진보진영이 우리 사회의 발전방향에 대하여 이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므로 자신의 정치사상을 표현하고 반대 정파에 대해 비판할 자유가 있다. 그리고 사상의 좌우를 떠나 그것의 표현행위가 국가안보나 사회질서에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을 일으키지 않는 한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의 일환으로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김 의원이나 반공집회를 주도한 인사들도 자신의 정치적 기본권을 행사할 자유가 있다.

그렇지만 최근 사태를 보면서, 현재 우리 사회의 '보수' 세력이 도대체 무엇을 지키려고 하는가를 묻고 싶다.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외치지만 그들이 지키는 민주주의는 친미와 반공의 틀에 갇혀버린 민주주의가 아닌지 의문스럽다. 북한을 타도의 대상으로만 보고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노력을 비웃는 것이 진정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 전체의 생존을 보장하는 것인지도 의문스럽다.

친미와 반공의 틀을 벗어나려는 일체의 사상과 활동에 대해서 무조건 '빨갱이', '좌경', '친북주사파'라고 낙인을 찍고 비판하는 것은 참으로 품격이 떨어지는 정치선동이다. 영화 '친구'의 대사를 빌리자면, "고마해라. 많이 묵었다 아이가"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 사회의 '보수' 세력은 민주화 이후 높아진 국민의 민주주의 의식을 알아야 한다.

최근 '보수'를 자칭하는 사람들의 발언과 행동을 보면, 만약 백범이 우리 시대에 돌아왔을 때 이들이 어떤 태도를 취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백범 등 임시정부의 국무위원급 다수 인사들은 분명한 우파 보수주의자였음에도, 단독정부 수립을 저지하기 위해 월북을 감행하였다. 부활한 백범은 우리 시대의 '보수' 세력으로부터 '친북· 연북(聯北) 노선'을 취한다고 맹비난을 받고, 국가보안법상 '잠입· 탈출죄'로 구속되어 중형을 선고받거나 또는 다시 암살을 당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 사회의 보수진영에 대하여 사상과 노선을 바꾸라고 말하는 것은 월권이다. 그러나 '수구·극우'라는 딱지를 받지 않으며 보수로서의 사회발전에 기여하려면 스스로를 혁신해야 한다고 충고하고 싶다. 과거의 기준으로만 현재를 평가하는 보수에게 미래는 없다. 우리 사회의 보수진영에게 몽양 여운형이나 죽산 조봉암의 노선을 따르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보수진영은 우남의 보수만이 보수라고 강변하지 말고, 백범의 보수도 배우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탈냉전 이후 무한경쟁 속에서 국가· 민족이익을 지키고 통일을 대비해야 하는 지금, 백범이 '나의 소원'에서 한 말은 보수 진보 모두가 새겨들어야 할 절절한 충고이다. "워싱턴도 모스크바도 우리의 서울은 될 수 없는 것이요, 또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니, 만일 그것을 주장하는 자가 있다고 하면 그것은 동경을 우리 서울로 하자는 자와 다름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철학을 찾고, 세우고, 주장하여야 한다. 이것을 깨닫는 날이 우리 동포가 진실로 독립정신을 가지는 날이요, 참으로 독립하는 날이다."

조 국 서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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