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대문에는 '감시카메라 작동 중'이라고 쓰여 있다. 대문 앞에 세워둔 오토바이를 지키기 위해서인데, 실은 감시카메라 같은 건 없다. 단골로 다니던 '다비다 미용실'이 문을 닫아서 '파랑새 미용실'로 옮겼다. 강직하고 인정 많은 아주머니가 주인인 미용실에는 머리 하러 온 손님보다 놀러 온 손님이 더 많다. 동네 돼지갈비집 반찬 냉장고 문은 유리로 만들어졌다. 가게 진열대처럼 스무 가지 반찬이 들여다보인다.시인 황인숙(45·사진)씨의 산문집 '인숙만필'(마음산책 발행)은 생활의 작은 낱장들을 묶은 것이다. 시인의 생활을 실은 산문의 무게는 그리 무겁지 않다. 밝고 환하다. 김만중의 '서포만필'에서 책 제목을 따왔으되 "글자 그대로의 만필(漫筆) 곧 마음 내키는 대로 쓴, 우스꽝스러운 글"이라는 설명부터가 그렇다. 남산 해방촌 옥탑방에서 일어나 산책하다가 이웃집 대문을 눈여겨보고, 미용실에서 머리 손질을 하다가 주인에게 교회에 다니라는 권고를 받기도 한다. 돼지갈비집에서 고기를 먹다 건너편 테이블에 앉은 아빠와 딸들이 주고받는 재미난 얘기를 슬쩍 듣고는 마음에 담아놓았다가 글로 옮긴다.
변호사 친구가 청와대로부터 법무부 장관 제의를 받고 고민하는 것을 보고 황인숙씨는 이렇게 조언했다. "네 순수함이 사람들을 감염시킬 거야. 망설일 것 없이 정부에 들어가. 그리고 이걸 게임이라고 생각해 봐. 네 순수함이 얼마나 퍼져나갈 수 있는지 확인해 보는 게임." 강금실 법무부 장관과 황인숙씨가 도란도란 얘기하는 자리에 끼었던 고종석 한국일보 논설위원의 전언이다. 고종석씨는 "황인숙 주변에 몰리는 사람들이, 대체로 순수해 보이는 것은, 황인숙의 순수에 엄청난 감염력이 있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것은 독자를 두고 조금 돌아서 간 추천이다. 책을 읽는 잠시 동안 어쩐지 착해지는 듯 싶으면서도 굳세게 살자고 마음을 다잡게 되니, 전염되는 무언가가 있다는 말은 확실히 맞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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