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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한미정상회담, 신뢰 구축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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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한미정상회담, 신뢰 구축부터

입력
2003.05.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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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던 베이징 3자 회담이 일단락되고 북핵 문제는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북한은 미국에게 이른바 '새롭고 대범한 제안'을 했고 미국은 북한의 이번 제의를 면밀히 검토하고 있는 상태다. 물론 회담 와중에 북한의 핵보유 시인 사태가 불거졌지만 주위의 호들갑과 달리 심각한 상황으로 진행되지 않았고 그로 인해 북한의 포괄적 제안이 평가절하되지는 않았다.북한의 제안내용이 구체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미국이 우려하고 관심을 표명한 대부분의 이슈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미국이 불가침을 확실하게 약속하고(pledge), 북미 국교를 수립하며, 남북· 북일간 경협을 방해하지 않고, 경수로 약속을 지킨다면 북한으로서도 핵활동 중지, 핵사찰 수용, 핵시설 폐기, 미사일 수출 및 발사 중단 용의가 있다는 것이었다. 비록 단계별 동시행동 원칙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이 정도 내용이면 사실상 미국이 북한에 새롭게 대가를 제공하지 않으면서도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다. 당장의 핵동결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뜨거운 감자였던 과거 핵사찰 문제와 미사일 문제까지 북한이 해결의 실마리를 내놓았다는 점에서 이대로만 된다면 미국은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3자 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여부는 다시 미국에 공이 넘어간 상황이다. 미국은 북한이 제시한 '대범한 제안'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추후 협상을 통해 해법의 합의점을 찾아갈 수도 있다. 그리고 이 해법은 북한체제의 존속을 보장하는 한에서만 가능하다.

반대로 미국은 3자 회담에서 돌출된 북한의 핵보유 시인을 묵인하면서 한계선을 후퇴시키더라도 대북협상만은 절대 거부하겠다는 의도된 무시정책을 펼 수도 있다. 이는 미국의 정책목표가 북한의 핵개발 저지 및 핵보유 불용이 아니라 북한 정권의 붕괴와 김정일 제거에 맞춰져 있음을 전제하는 것이다. 결국 북한 정권의 인정과 제거라는 상충된 목표 사이에서 미국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가 향후 북핵 해법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 우리 정부의 일관된 입장은 북한과 미국이 마주 앉아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쟁불사의 군사 대응까지를 문제해결의 옵션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미국과 달리 이곳 한반도에서 공동체의 삶을 영위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영위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에서 당연히 우리는 이번에 북한이 제시했다는 포괄적 제안을 미국이 협상의 출발점으로 수용하기를 기대하고 또 요구해야 한다.

신정부 출범 이후 처음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이 각별한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이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을 처음 대면하게 되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과도한 욕심을 내서는 안된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대북강경 입장의 부시 대통령을 설득하려 했던 2001년 3월의 한미정상회담이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별다른 이익을 주지 못했음을 우리는 그 후에 힘겹게 깨달아야만 했다. 어차피 미국의 태도변화 없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법이 불가능하다면 오히려 노 대통령은 화통하고 솔직담백한 특유의 기질을 발휘하여 상대방과의 친숙함을 확실하게 다져놓는 것이 보다 현명한 방법이 될 것이다.

이미 간접적인 방식을 통해 우리 정부와 노무현 대통령의 확고한 입장이 충분히 전달된 만큼 이번 정상회담은 약간의 어색함이 남아 있을 두 정상간에 인간적 신뢰를 쌓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친해지지 않고 상대의 입장을 바꾸기란 인간관계에서도 매우 힘든 일이다.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서라도 노무현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협상하거나 설득하려 하지말고 친하게 사귀려고 노력해야 한다. 사실은 그것이 이기는 길이다.

김 근 식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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