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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793>디엔비엔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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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793>디엔비엔푸

입력
2003.05.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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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5월7일 보구엔지압(武元甲) 장군이 이끄는 베트민군(越盟軍)이 베트남 북부 디엔비엔푸 요새에서 프랑스군을 궤멸시켰다. 프랑스군은 이 전투에서 5,000여명이 사망하고 1만여 명이 사로잡혔다. 디엔비엔푸 전투는 인도차이나 전쟁을 다루기 위해 그 해 4월부터 열리고 있던 제네바 회의에 결정적 영향을 끼쳐 프랑스는 7월에 휴전 협정에 조인하고 인도차이나에서 군대를 모두 철수시켰다.제2차 세계 대전 말기에 일본군에게 패퇴해 인도차이나에서 물러난 프랑스가 이 지역을 다시 지배하기 위해 1946년에 일으킨 전쟁은 미국이 인도차이나에 본격적으로 개입한 1960년대 이후의 전쟁과 구별하기 위해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라고 부른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에서는 민족주의 세력들이 독립 국가 건설을 꾀했으나 옛 식민 모국 프랑스는 이 지역에 대한 야심을 접지 않았다.

베트남 사람들의 압도적 다수가 호치민(胡志明)이 이끄는 신생 베트남민주공화국을 지지하자, 프랑스는 남부를 분리시키기 위해 사이공(지금의 호치민시)에다 코친차이나 임시정부를 세우고 그 후견자가 되었다. 프랑스는 1946년 11월 베트민군을 전면적으로 공격하며 전쟁을 일으킨 뒤 코친차이나 임시정부를 베트남 임시 중앙정부로 개칭했고, 1949년 6월에는 해외에 망명 중인 구엔(阮) 왕조의 바오다이(保大) 황제를 주석으로 앉혀 친(親)프랑스 정부를 세웠다. 프랑스는 국제 여론의 비판에도 아랑곳없이 인도차이나에서 제국주의 전쟁을 펼쳐나갔지만, 49년 전 오늘 디엔비엔푸에서 치욕적 패배를 맛본 뒤 이 지역에서 손을 뗐다. 그러나 얼마 뒤 미국이 이 지역에 개입해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일으켰으니, 인도차이나 사람들로서는 늑대를 몰아내고 범을 맞은 격이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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