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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록의 대부 신중현 (59) 기준을 갖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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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록의 대부 신중현 (59) 기준을 갖는다는 것.

입력
2003.05.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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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했던 그룹들 중 음악적으로 의미 있었던 것이라면 , 덩키스, 퀘션스, 더 맨, 엽전 등이다. 그 가운데서 최고를 뽑으라면 나는 1968∼69년의 덩키스를 들겠다.김호식(드럼), 김민랑(키보드), 이태현(베이스), 오덕기(제2 기타) 등 네 사나이는 오직 음악에만 몰두했던 사람들이다. 지금처럼 가요판이 가수나 쇼만을 위해 존재하기 이전에, 이들은 진짜 음악이 무엇인가를 보여 주었다.

미리 악보를 한 번씩 읽고 난 뒤, 우리는 미 8군의 유니버살이나 화양 등 대행사의 연습실에서 내가 쓴 곡들을 마스터해 나갔다. 그 곡의 음악적 색채가 어떤 것인가를 이야기 해 준 뒤, 멤버 각자에게 어떤 식으로 연주하라며 구체적으로 요구했다.

이렇게 연습분이 차곡차곡 쌓여 가 얼추 한달이 되면 음반이 하나 나오는 식이었다. '봄비', '님아', '월남에서 돌아 온 김상사', '늦기 전에' 등 나의 대표곡들이 쏟아져 나온 것은 그들의 성실한 작업 태도 덕분이었다. 그들 같은 동료라면 이 세상에 나쁜 곡이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명곡이 되고 못 되고 하는 것은 연주자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는 진리를 새삼 깨우쳐 주었다.

앞으로 나의 과제는 DVD다. DVD(digital versatile disc)의 정체가 제대로 이해된다면 왜 내가 그것을 숙제로 남겨 두고 있는 지 설명될 것이다. 아무리 최신식 오토바이와 스포츠카에다 몇 백만원짜리 오디오를 갖고 있으면 뭣 하는가? 거기서 흘러나오는 것이라곤 십중팔구 테크노, 즉 컴퓨터 시스템이 만들어 낸 평면적 음악일 뿐인데.

내가 말하는 DVD란 말하자면 '우주 음악'의 이상을 구현하게 해 주는 문명의 이기다. 음이 빈 공간 위로 마구 유영하는 듯 살아 움직이는 록이다. 그것은 일찍이 지미 헨드릭스가, 또 내가 1970년 서울 시민회관에서 펼치고자 했던 음악적 시도를 현실화시켜 낼 디딤돌이다. 그러나 우리 둘 모두 당대의 기술적 한계로 말미암아 미완의 시도로 끝날 수 박에 없었다.

내가 구상중인 DVD 시스템에는 6개의 스피커가 필요하다. 5개는 보통 스피커다. 스테레오가 아니라, 소리가 감상자 주위를 돌아 다니는 것이다. 6번째는 저음 전용 스피커인 우퍼로, 땅을 상징한다. 그렇게 되면 록 음악이 공중에서 유영하게 되는 셈이다. 테크노라는 가장 기계적인 음악을 거쳐, 록은 다시 자신의 입지를 주장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내게는 DVD를 혼자서 제작해 낼 수 있는 영상·멀티 오디오 기자재가 마련돼 있다. 2000년 이후 금고를 털어 해외로부터 DVD 관련 기자재를 하나둘씩 모아둔 결과다. 현재 신중현 그룹이 하고 있는 연습과 녹음의 상당 부분은 바로 그것을 위한 영상과 음원 제작용이다. 일련의 과정을 거쳐 상품화시켜내는 데는 1억여원의 자금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제작자는 나다. 그래서 최소의 원가다.

만일 일반 회사에서 제작 시스템을 마련해 연주 등 작업 전반을 총괄한다면 족히 10억은 소요될 것이다. 옛날에 찍어 둔 것까지 합쳐, 멀티 서라운드 녹음 등 작업 전반에 필요한 시간은 6개월여로 보고 있다.

사실 내가 혼자 벌이고 있는 이 작업은 우리나라의 조건으로 볼 때 시기상조인 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대중이 DVD라는 전문적인 기자재를 장만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 아직은 그렇다는 말이다. 하드 웨어가 대중적으로 보급된다면 긴요한 것은 그 속에 담을 컨텐츠다. 나는 말하자면 '그날'을 위해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다.

이는 당대 기술력과 긴밀하게 조응하며 발달해 온 록의 운명이다. 요즘 주위에 보면 이 일에 젊은 사람들이 뛰어 들고 있는데, 뭣보다 록에 대해 모르면 서라운드의 개념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사실이 최대의 걸림돌이 될 것이다. 이 점은 특히 DVD 콘텐츠 준비 작업을 할 때 난관으로 작용할 것이라 본다. 덩키스라는 그룹에 대해 이야기 한 것은 그 콘텐츠 작업을 할 때, 어떤 모델이 내게는 있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함이다.

허구하게 만들어져 나오는 그룹들이 판치는 현재의 대중 가요계가 참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경험에 의한 교육이라는 믿음에서다. 정보는 넘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옳고 나쁘다의 수준이나 기준을 제시해 주는 사람이다. 그 일 역시 내몫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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