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5월6일 파리에서 학생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면서 5월 혁명이 시동을 걸었다. 그 뒤 보름간 프랑스 전역을 뒤흔든 5월 사태는 파리 서쪽 교외 낭테르 대학(파리10대학)에서 학습 환경을 개선하고 학내 관료주의를 없애라는 학생들의 요구로 시작되었다. 시위가 소르본(파리4대학)과 그 앞의 라틴 구역으로 번지자 정부는 대학들을 폐쇄했고, 정부의 이런 강경 대응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돼 시위는 삽시간에 전국의 학생·노동자들에게 번져나갔다.주유소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사람들의 발이 묶일 지경이 되자 프랑스인들만이 아니라 외국의 관찰자들까지 이 해 5월에서 1789년 7월의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대통령 드골은 사임을 심각하게 고려했으나 문화부 장관 앙드레 말로가 샹제리제 거리에서 조직한 친정부 시위 이후 정면 돌파 쪽으로 마음을 바꿨다. 그 다음달 치러진 총선에서 프랑스인들은 집권세력을 다시 다수파로 만듦으로써 드골에 대한 지지를 확인했다. 그러나 드골 체제는 이미 기우뚱거리고 있었다. 이듬해 4월 자신이 제안한 지방자치제와 상원개혁안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되자 드골은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났다.
1968년 5월은 1789년 7월과 달리 즉각 체제를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그러니까 이 해에 좁은 의미의 혁명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프랑스만이 아니라 독일과 체코슬로바키아, 일본과 미국 등 세계 여러 곳에서 낡은 사회를 거부하며 거리로 나선 '1968년의 아이들'은 웅장하면서도 평화로운 반항을 통해서 그 뒤 한 세대 동안의 프로그램을 짰다. 심성과 습속의 지속적 변화를 가능케 할 위대한 의식의 혁명이 바로 그 해에 시작됐다는 점에서, 1968년은 유럽의 주요 도시에서 혁명이 터져 나왔던 1848년에 못지않은 세계 혁명의 해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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