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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쓴소리]룸살롱의 "복수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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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쓴소리]룸살롱의 "복수혈전"

입력
2003.05.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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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국내 기업의 접대비는 4조7,000억원으로 올해 정부예산(112조원)의 4.2%나 되었으며, 그 가운데 룸 살롱과 골프장에서 쓴 접대비만 1조8,000억원이었다. 국세청이 내년부터 룸 살롱과 골프 경비를 접대비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을 때에 대부분의 국민은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박수 소리는 안 들리고 기업들의 불만의 소리만 들렸던 모양이다. 국세청은 최근 그 결정을 취소하고 말았다. 그 소심함이 딱하다.어쨌든 한국의 유별난 접대 관행은 한국의 전반적인 조직 문화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이와 관련, 미국의 동물학자 리처드 코니프가 쓴 <부자> 라는 책은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어느 조직 유형이건 다 일장일단이 있기 마련이다. 내부 위계질서가 강한 조직은 일사불란한 일 처리를 가능케 하는 장점이 있다. 코니프는 '병아리 실험'을 예로 제시한다. 한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몇몇 병아리 무리들에게는 모이 먹는 순서를 방해하지 않고 내버려두고, 다른 무리들에 대해서는 어느 병아리가 경쟁을 통해 우두머리가 되었든 간에 매주 그 우두머리를 제거하여 그들의 먹이 먹는 순서를 고의적으로 혼란스럽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 결과 위계질서를 방해받지 않은 무리들의 경우 싸움질도 덜할 뿐만 아니라 부하들도 모이를 더 먹을 수 있었고, 체중이 더 빨리 불었을 뿐만 아니라 달걀도 더 많이 생산했다는 것이다.

인간이 병아리란 말인가? 행여 그런 식으로 기분 나빠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인간의 조직에서도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지만, 인간은 분명히 병아리와는 다른 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엄격한 위계질서 체제하에서는 조직원들의 스트레스가 증가하고 자발성과 창의성이 거세당하기 쉽다. 즉, 좋은 점도 있지만 나쁜 점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접대 행위의 두 축은 일시적인 계급 초월성과 전투적인 과시성이다. 접대 담당자가 보통 고객이나 공무원 2∼3명과 함께 룸 살롱에 가면 300만원 가량을 쓴다고 하는데, 이는 아예 300만원을 뇌물로 주는 것과는 다른 효과가 있다는 게 접대 담당자들의 한결같은 증언이다. 왜 그럴까?

코니프는 낭비적인 접대는 뇌물만큼 효과가 있으며, 향연은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고 보유하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전쟁의 의식화(儀式化)된 대용수단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오늘날 사교계의 명사들이 일류 손님들을 초대하기 위하여 결사적으로 다투면서 파티를 경쟁적으로 열고 있는 현상에 학자들이 주목하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노릇이다"라고 개탄한다.

한국의 상류층도 그러는지는 모르겠으나, 중산층도 가담하는 룸 살롱 향연은 한국 사회의 엄격한 위계질서 문화의 '한풀이 마당'의 성격이 강하다. 모두 다 회사 돈이나 남의 돈으로 흥청망청 마셔대는 것 자체가 무슨 '복수혈전'을 방불케 한다.

사회에 대한 복수일까? 회사에 대한 복수일까? 젊고 예쁜 여성들을 '노예화'하여 처절하게 놀고 마시는 향연은 자신의 각박한 삶을 복제화하여 음미해보는 전쟁 의식(儀式)인가?

오고 가는 폭탄주 세례 속에 삶이라고 하는 전쟁에서의 투지를 다지는 건 서글픈 일이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견뎌내고 행복할 수 있게끔 기존 조직 문화와 사회 시스템을 바꿔나가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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