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벤 린드크비스트 지음·김남섭 옮김 한겨레신문사 발행·1만원
유럽인에게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여전히 끔찍한 역사이다.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그 추악하고 아픈 역사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아우슈비츠를 둘러 보는 발길은 지금도 끊이지 않는다. 나치의 만행에는 인종주의라는 망령이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유럽이 저지른 인종주의 학살이 그 뿐이었는가. 유럽은 나치의 인간 도살을 뇌리에 새기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스웨덴의 문화비평가이자 탐험가인 린드크비스트는 결코 아니라고 말한다. 나치 이전에 이미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의 18·19세기 아프리카 정복에는 오도된 인종주의 논리가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었다고.
이 책은 정복욕과 우월 의식에 바탕한 유럽인의 만행을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고발하고 있다. 동서부 아프리카에 대한 유럽의 침략 행적을 많은 기록을 토대로 복원하는 것을 골간으로 하면서 글은 다분히 에세이 면모를 띠고 있어 눈길을 끈다. 유럽의 아프리카 침탈 역사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저자는 알제리 중부 사하라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 인살라 등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 근대 초기 유럽 제국주의 각국의 아프리카 침탈을 다룬 문학작품과 학술서의 내용, 정복을 목적으로 리볼버와 라이플과 카빈소총 등으로 무장한 유럽인의 악행을 다룬 많은 보고서들이 황량한 사막 도시에 선 저자의 느낌과 잇달아 교직된다.
이야기를 끌어 가는 것은 우크라이나 태생의 영국 소설가 조셉 콘래드가 콩고에서 직접 겪은 일을 토대로 쓴 소설 '어둠의 한가운데'(The Heart of Darkness)이다. 유럽인이 콩고에서 저지른 학살을 목도하면서 한때 자살까지 결심한 콘래드의 소설과 마찬가지로 린드크비스트의 글은 무고한 흑인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갖다 대고, 전리품처럼 손목을 자르던 영국을 비롯한 유럽인의 무자비한 폭력과 인종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영국의 영웅 윈스턴 처칠은 20세기 초 아프리카 동부 수단의 중동부 도시 옴두르만에서 벌어질 전투를 기다리던 상황을 회고하며 '이런 종류의 전쟁은 스릴로 가득 차 있었다. 전쟁은 1차 세계대전 같지 않았다. 지난 즐거웠던 시절에 영국의 작은 전쟁에 참여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은 멋진 스포츠 게임에 불과했다'고 썼다.
아프리카인이 죽는 것을 보는 것은 처칠에게는 스포츠 경기 관람과 비슷했다. 마치 영국 이주민들이 양을 칠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호주 남서부 원주민 태즈메이니아족을 절멸케 한 것처럼. 저자는 '홀로코스트는 유럽에서 유일무이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세계의 다른 지역에 있었던 서구 팽창의 역사는 민족 전체가 절멸되는 수많은 사례를 만들었다'고 썼다. 문명 전파로 포장한 유럽인의 식민 개척 과정이 얼마나 야만적이었던가를 새삼 확인시키는 책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