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권 지음 푸른숲 발행·1만3,000원
이광모의 영화 '아름다운 시절'은 미 군정기 누이와 어머니가 몸을 판 덕에 자신의 생계와 정체성을 지탱하는 한국 남성의 분열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를 할아버지, 아버지께 바친다'는 마지막 자막은 실망을 넘어 당황을 느낄 정도다. 이 영화는 한국 남성이 자신의 상처를 역사화하는 방식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폭력성과 나약함, 자기 중심성에 근거한 자기 연민과 피해의식은 한국적 남성성의 가장 큰 특징이다. 제국에 모욕당한 아버지를 위로하겠다는 감독의 남성 중심적 사유 안에서 여성은 가족·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존재일 뿐 주체가 될 수 없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절대 주체인 남성은 자신을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이는 서구·이성애자·비장애인도 마찬가지다. 서점에 가 보라. 남성·이성애자·'일반인'을 연구한 책보다 여성·동성애자·'장애인'을 논하는 책이 훨씬 많다. 권력자는 자신을 연구하거나 성찰하지 않아도 된다. 이 영화 작가처럼 인간 관계든, 거대 권력 구조에서든 변해야 할 것은 세상이나 타자이지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정치학자 전인권(성공회대 연구교수)의 '남자의 탄생'은 주목할 만하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초기 페미니즘 이론의 명제는 남성에게도 해당된다. 인종 차별이 피부색에 대한 임의적 해석의 결과이듯 성별은 생물학적 필연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정치적 제도이다. '한 아이의 유년기를 통해 본 한국 남자의 정체성 형성 과정'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한국사회에서 남자의 정체성을 '동굴 속 황제', 즉 권위주의와 자기애의 동굴에 갇혀 주위를 제대로 살펴보지 못하는 사람으로 파악하면서 그러한 특성이 어떻게 획득·훈련되는지를 매우 성실하고 흥미롭게 기록하고 있다.
책은 저자의 5∼12세의 유년기(1960년대) 경험을 다룬다. 아버지의 이불은 다른 사람 이불에 깔리면 안되기 때문에 맨 나중에 개고 가장 먼저 펴야 한다. 아버지―형―나―남동생― 누이―어머니라는 밥 푸는 순서는 밥 푸는 순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족, 또는 국가 안의 계급 질서다.
이처럼 일상에서 피억압자가 자발적으로 규율하는 상세한 지배·피지배 매뉴얼을 의식한다면 민주주의와 인권을 논하는 정치학이 바로 어디에서 출발해야 하는지를 묻게 된다. 물론 한국의 식민성, 근대화, 가족, 국가주의를 성 인지적 관점에서 논의한 연구는 이미 조혜정, 김은실, 김현미를 비롯한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해왔다. 그러나 남성이 자신의 남성성을 성찰하면서 젠더(성별 제도)를 역사적, 정치적 문제로 제기한 본격적 고해 성사는 내가 알기로는 이 책이 처음이다.
한국사회에서 저자와 같이 제도교육 세례를 충실히 받은 40대 남성에게 이 책은 하나의 모험이었을 것 같다. 훈계와 계몽, 지사적 열변, 독단, 자기 도취, 서구 숭배, 거의 편집증적인 남성 중심적 시선…. '남자의 탄생'은 이런 남성 지식인의 글쓰기 방법과 시각에 새로운 지평을 연다. 이 책의 모든 서술 주어는 '나'로 되어 있다. 필자, 본인, 연구자 같은 말로 객관성을 가장하지 않는다. 부모에 대한 분석은 깊은 애정이 느껴지면서도 대단히 비판적이다. 작가 자신이 연구 도구이며 자기 가족이 주된 연구 대상이다. 이런 작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존 정치학의 상대화 혹은 재개념화가 필요하다.
그는 정치학자로서 늘 "한국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가능한가? "라는 질문을 던져왔지만, 어느 순간 자신이 비판하려는 한국사회, 그토록 닮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의 모습이 바로 자기 몸 안에 있음을 알게 된다. 정말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 현실 정치도 국제 정치도 성차별과 연령주의에 기초한 가족 정치학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제까지 나와 세상을 망쳐온 아버지를 '살해'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의 고백대로 누군가의 단점을 안다는 것과 내가 그것을 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기 때문이다.
/정희진·경희대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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