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심장병이나 고혈압 환자, 임산부가 아니고 음주를 하지 않았습니다. 무서워서 포기하더라도 환불을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지난달 27일 오후3시 경기 분당 율동공원 번지점프장. 스포츠전문채널 MBC―ESPN의 인기 여성캐스터 김수한(24)씨가 이 글귀가 적힌 번지점프각서에 서명을 했다."명색이 도전과 모험의 스포츠세계를 전달하면서 번지점프 하나 못해 봐서야 되겠습니까." 톡톡 튀는 진행으로 스포츠팬들에게 청량음료 같은 시원함을 주는 그녀답게 선뜻 체중계에 올라섰다. 몸무게에 따라 탄력성이 다른 16가지의 번지코드(로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 이어 교관이 "아휴…. 겨우 46㎏이네요.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단단히 묶어야겠어요"라며 하네스(어깨와 허리에 묶는 벨트)를 메주었다.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발목에 줄을 묶고 뛰는 '앵클 점프'를 하지만 초보자는 이렇게 가슴에 줄을 묶고 '보디 점프'를 해야 합니다. 과도한 동작을 해선 안됩니다."
'몸무게는 속이지 마세요'
잠시후 김씨가 번지점프대에 이르는 엘리베이터에 타자 '철커덩' 소리와 함께 45m를 올라간다. 말이 엘리베이터지 육중한 철판으로 이어진 고층 건축공사장의 승강기처럼 으시시하다. 문이 열리자 우측의 수려한 공원 언덕과 잔잔한 호수, 손가락 크기만하게 보이는 구경꾼들…. 눈앞의 풍경은 아름답지만 창공의 거센 바람소리 부터가 영 거슬린다. "아직까지는 괜찮아요. 일부러 밑을 쳐다보지 않고 뛰겠어요. 두려움과 호기심이 동시에 발동하는 것 같아요." 용감한 척은 하지만 철제 빔 위를 걸어가는 김씨의 다리가 사시나무 떨 듯 후들거린다.
교관은 심호흡을 주문하며 두 가지를 당부했다. "되도록 멀리 뛰어야 합니다. 바로 밑으로 떨어지면 줄이 몸에 감기거나 찰과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뛰어내리면서 줄을 잡지 마세요. 손가락이 걸리면 안되니까요." 앞사람이 떨어질 때 마다 철탑이 좌우로 요동치고 차례를 기다리는 김씨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해 보인다.
아찔한 추락쾌감에 스트레스 훌훌
등뒤의 사람들과 측은한 표정의 눈인사를 마친 후 드디어 번지점프대에 섰다. 오금이 저려 똑바로 서 있기가 힘든 듯 김씨는 쇠기둥을 잡고 나서야 간신히 발 밑을 내려다본다. 밑에서 기다리는 동료들이 "수한씨 파이팅!"을 외쳐대지만 백척간두에 선 김씨에겐 안들리는 모양이다. "자! 준비됐습니까? 파이브, 포, 쓰리." "잠깐만요!" 무릎에 힘이 빠진 김씨가 자꾸 뒤돌아 도망치고 싶은 표정이다. 5분여 실랑이 끝에 "사람들 많은데 시간 끌면 안돼요. 지금 못 뛰면 끝까지 못 뛰어요. 그냥 내려가면 저 밑에 친구들에게 평생 놀림 당할 각오하세요." 교관의 닦달에 오기가 발동한듯 자세를 잡았지만 여전히 후회막심한 게 얼굴에 써있다.
다시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두 팔을 벌리고 새처럼 날면 됩니다. 파이브, 포, 쓰리, 투, 원, 번지!" 교관의 우렁찬 구령소리에 눈을 질끈 감은 김씨가 힘차게 창공으로 몸을 던졌다. 이를 지켜보던 대기자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른다.
'여자들이 훨씬 더 용감해요'
번지점프는 남태평양 판타코스트섬 원주민들의 성인식에서 유래했다. 남상일 교관은 "오늘 50여명의 도전자 중 반 이상이 여자였는데 포기한 3명은 모두 20대 건장한 청년들이었다"며 "남성들은 포기 유무 결정이 빠른 반면 여성들은 쉽게 뛰지 못하지만 점프대 주변에서 계속 버티다 결국은 뛰어내린다"고 전했다. 남씨는 번지점프의 매력을 '두려움'이라고 설명했다. 점프를 준비하면서 발끝부터 솟아나는 두려움을 한순간의 추락과 함께 터뜨리는 맛. 낙하하면서 심장이 떨어졌다 다시 붙는 기분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쾌감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땅을 딛고 서 있는게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지상에 '도착'한 후 일성을 터트린 김수한 캐스터는 성취감으로 가득찬 미소를 띄며 몸서리쳤던 기억을 쏟아냈다. "진짜 스릴은 한번 떨어졌다가 다시 공중으로 몸뚱이가 튕겨져오를 때 온몸을 죄어오는 공포감이었어요. 꼭 천국과 지옥이 교차하는 기분이죠.".
얼마후 아득한 공포감이 그리워진 김씨는 또 한번 번지점프를 감행해 주위의 혀를 차게 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김씨의 갸날픈 모습과 번지점프의 무시무시한 담력이 오버랩되며 특유의 생기발랄한 멘트가 귓가를 맴돌았다. "마이클 조던, 또 3점슛, 노 골! 조던 선수 오늘도 계속 망신이군요." "배리 본즈가 600개 홈런 대기록을 앞두고 있습니다. 600개 하면 별 것 아닌 것 같으시죠? 여러분. 햄버거 600개 한번 드셔보세요…."
/박석원기자 spark@hk.co.kr
● 얼마나 위험할까
보기에도 아찔한 번지점프는 얼마나 위험한 레포츠일까. 결론은 무섭기는 하지만 사고의 위험성은 거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율동공원의 김재관 교관은 "번지점프에는 3중4중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고, 발목에 벨트를 체울 경우 하체의 벨트와도 연결해 혹시라도 발목에서 벨트가 빠져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안전함을 강조했다. 김 교관은 1개월간의 강도높은 미국번지점프협회 교육을 거쳐 인증서를 받은 베테랑. 그는 "탄력성이 높은 특수고무로 이뤄진 번지코드 속에는 끊어질 위험을 대비해 백업 라인이 연결돼 있어 절대 안전하다"고 덧붙였다.
가평 탑랜드의 김진태 실장은 "번지코드는 미국이나 호주, 유럽의 번지점프 선진국에서 일정한 장력 테스트를 통과한 제품을 들여와 쓰기 때문에 안심해도 된다"며 "2000년 3월 개장이후 단 1건도 줄이 끊어지거나 추락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단지 초보자가 멀리 뛰지 못했을 때 줄이 몸에 스쳐 찰과상을 입는 경우는 종종 있다. 그러나 떨어져도 다치지 않도록 점프대 밑에는 수심 5.4m(율동공원)의 물이나 매트가 설치돼 있어 최악의 경우에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율동공원 김 교관은 "국내에서 몇차례 발생한 사고는 모두 대학축제 등 간이시설로 만든 점프대이거나 경험이 부족한 운영자, 바닥에 물이나 매트가 없었다는 점이 공통점"이라며 "이벤트성 시설은 주의깊게 판단하는 게 좋다"고 권고했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 율동공원 김재관 교관이 번지점프 권하는 6가지 경우
하나, 내 남자친구는 과연 용기가 있을까 의심될 때….
둘, 매일매일 듣는 '공부하라' 소리에 스트레스가 꽉 찬 수험생이 스트레스도 풀고 자신감을 갖고 싶을 때….
셋, 주변에서 공수부대 출신이라고 뻐기고 다닐 때….
넷, 청소년에서 어른으로 한단계 성숙할 때, 성숙의 아픔을 짜릿한 추억으로 남기고 싶을 때….
다섯, 애인 있습니까? 있습니다! 예쁩니까? 예쁩니다. 애인 이름 복창!!! 애인에게 믿음을 주고 싶을 때….
여섯, 공부 잘하고 똑똑하지만 겁많은 수험생이 어느날 나타난 쥐를 보고 뒤로 자빠져 코 깨지는 아픔을 겪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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