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시중은행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 은행마다 행장 낙마설로 몸살을 앓고 있다. 겉으로는 자율·책임 경영을 말하지만 참여정부의 인사행태도 과거 관치금융 시절과 다를 게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다른 자리에서 만난 금융감독원 간부의 생각은 달랐다. 특정 행장의 이름을 거론하며 "이제 알아서 짐 싸야지, 꼭 누구처럼 직접 언질을 받아야 물러나나"라고 말했다. 지난달 "정부로부터 언질을 받았다"며 퇴임한 정건용 전 산업은행 총재를 빗댄 말이다.재경부, 금감원 등의 인사와 맞물려 시중은행장의 낙마설이 거의 공개적으로 나돌고 있다. 김정태 국민은행장의 경우 새정부 출범 후 "새 정부에 잘못 보여 도중 하차한다"는 말이 계속 되더니, 최근에는 감사원의 은행 감사까지 받았다. 이덕훈 우리은행장도 2001년 3월 취임 이전에 발생한 금융사고로 세 번이나 주의조치를 받았다. '교체를 위한 사전포석'이라는 해석이다. 우리은행의 직원들은 "은행권에서 1분기 최고 실적을 올린 CEO가 어떻게 교체설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느냐"며 분개하고 있다.
물론 정부가 두 은행의 대주주로서 정당한 권한을 행사하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과거처럼 '자리 만들기' 차원에서 '은행장 흔들기'에 나섰다는 물증도 없다. 그러나 문제는 이미 시장에서 관치금융의 부활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계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주총이 끝나자마자 행장이 바뀐다는 소문이 도는 국민은행이 과연 뉴욕 증시에 상장된 은행인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정부가 합리적 명분 없이 지배구조에 개입할 경우 한국시장 전체에 대한 신뢰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 애널리스트의 말을 정부는 시장의 엄중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김관명 경제부 기자/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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