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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록의 대부 신중현 (56) 매체에 길들여지지 않는 "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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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록의 대부 신중현 (56) 매체에 길들여지지 않는 "록"

입력
2003.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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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TV 가요 프로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가수다. 뮤직 비디오도 아닌 TV 음악 프로에서 이렇게 가수만 비추는 나라는 찾아 보기 힘들다. 가수 뒤의 사람들은 아예 눈에 안 들어 오는 모양이다. 가수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음악이란 단순한 오락을 위한 것이거나, 춤의 배경 이상은 못 된다.나이트 클럽에서 연주했을 때조차도 그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레드 제펠린이나 지미 헨드릭스 등 정통적 록까지 들려 줬던 나로서는 TV의 무대에 섞여들 수 없었다. 술에 취해 누가 무대에 오르는 지도 알아보지 못 하는 사람들앞에서 기타를 든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허무하기만 했다. 그러나 내가 록 연주에 몰입해 가자 춤을 추던 사람들이 한두명씩 내 무대에 시선을 주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강산'을 연주하자, 아예 숙연해 지기까지 해 내가 오히려 놀랐다. 그 곡들을 다 연주하고 무대를 내려가려는데, 사람들이 줄을 서서 악수를 하자며 손을 내밀었고, 더러는 사인을 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TV는 한푼 에누리 없는 눈요기 음악 이상의 것은 요구하지도 바라지도 않는다. 가수에만 촛점을 맞추다 보니 음악이 고루 발전하지 못 하는 것은 물론, 그룹의 음악은 모두 죽어 버린다. 그룹 음악의 개념은 음지로 몰리고, 댄스나 트로트 일색인 가요 현실을 만든 것은 단적으로 말해 PD 때문이다. 우리나라 PD와 스탭들은 음악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만일 알았더라면 아주 가끔씩 어쩌다 한 번 기타 연주자의 모습에 렌즈를 맞출 때, 오른손만 클로즈 업 시키는 우는 범하지 않을 것이다. 오른손이 제일 많이 움직이니까 그런 모양이다. 그러나 밴드의 음악에서 중요한 것은 가수가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연주자들이다. 무지의 소산으로 빚어지는 문제는 이런 시각적인 데만 있는 게 아니다.

'열린 음악회' 처럼 대형 앙상블의 음악 방송에서는 감도가 낮은 마이크를 써 전체적인 소리를 부드럽게 한다. 그러나 록 그룹의 음악은 주자 각각의 개성적 소리가 더 중요하다. TV 음악 프로가 제대로 되려면, 강렬하게 튀어나가는 음이나 잡음까지 음악화해 내는 그룹의 소리를 제대로 잡아낼 수 있어야 한다.

시각 매체들은 대중 음악이라 하면 놀이용 음악 아니면, 춤의 배경으로만 간주한다. 이것이 내가 TV 음악 프로를 사양하는 이유다. 미국이나 일본 처럼 그룹만 모아서 방영하는 TV 프로그램이 빛을 보게 되는 때는 언제쯤일까?

이렇게 문제가 산적돼 온 것은 내가 맨 처음 그룹 사운드를 만들었을 때, 그것을 하나의 새 장르로 인정하지 않고 퇴폐로 몰기에만 급급했던 기득 계층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뽕짝이나 뽕락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충분히 존재할 이유가 있다. 문제는 대중의 수준을 그 안으로 제한시키고 만다는 데 있다.

가수 이야기가 나온 김에 록 보컬에 관한 나의 생각을 밝혀두고자 한다. 나의 록은 가성과 두성뿐 아니라 비성과 탁성 등 몸에서 나오는 최대한의 다양한 창법을 포용한다. 쥐어짜듯 기괴한 목소리마저 들리는 '선녀' 같은 곡은 사람이 낼 수 있는 소리의 최대한을 추구해 보려는 내 나름의 실험이 잘 표출돼 있다. 중요한 것은 당대에 이해되느냐 아니냐가 아니다. 세월이 한참 흐른 지금에 와서도 싫증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다. 뽕짝이나 뽕락이 바람직하지 못 한 이유는 대중에 영합한다는 데 있지 않다. 문제는 대중의 수준을 그 정도로 한정시키고 만다는 데 진짜 문제가 있다. 재미 있는 일은 봉짝의 원조라 할 만한 일본에서 내 노래를 불렀던 '곱창전골'이라는 팀이 있었다는 점이다. 나를 비롯해 산울림, 활주로, 이정선, 트윈 폴리오 등 1960∼80년대 한국의 포크와 록만을 연주하겠다며 일본에서 만들어진 4인조 밴드였다. 1998년 KBS-TV의 '일요스페셜'을 통해 국내에 처음 알려진 팀인데, 방영 직후 문정동까지 찾아 왔던 적이 있다. 내가 기억하지 못 하는 음반까지 꿰고 있을 정도로 내 음악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었다.

리더였던 사토 유케(노래·기타)라는 친구가 내 히트곡을 자기 나름대로 편곡해서 제법 잘 만들어 놓았길래 호감이 갔다. 홍익대 앞 클럽에서 활동하던 이들은 아들 대철이 프로듀서를 맡아 '안녕하시므니까?'를 발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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