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주간 극장가의 동향을 보고 김모 평론가는 가슴이 뜨끔해졌다. 김모 평론가가 추천한 영화와는 아무 상관없는 영화들이 흥행 상위 목록에 올랐기 때문이다. '아무개와 극장 가기'란 제목을 단 칼럼에서 힘을 주고 칭찬한 영화들은 추풍낙엽처럼 극장 간판을 내렸다. 이러니 이 칼럼 제목이 곧 '아무개와 극장 가지 않기'로 바뀌어도 할 말이 없게 생겼다. 칼럼의 존폐 여부를 두고 고민하던 김모 평론가는 곧바로 약삭빠른 생존 명분을 생각해냈다. 평론가가 추천한 영화가 의미는 있되, 재미는 없으리라고 지레 짐작하는 눈치 빠른 관객에게 이 칼럼은 봐서는 안 될 영화 관람 목록을 만드는데 중요한 참조자료가 될 것이라고. (하지만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한국일보 독자들의 수준으로 볼 때 눈치 빠른 관객이 아닌, 눈 밝은 관객이 많이 계실 것으로 믿는다.)봉준호의 두 번째 영화 '살인의 추억'(사진)은 평단의 호평과 대중의 호응이 드물게 일치하는 영화가 될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근래 만들어진 한국 상업영화 중에 가장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정통파보다는 변칙 복서가 환영받는 듯한 최근 한국 대중 영화의 흐름에서 '살인의 추억'은 무엇보다 플롯과 캐릭터의 세공력에 승부를 걸었을 때 어떤 재미와 여운을 줄 수 있는지를 입증한다. 송강호, 김상경을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는 물론이고 촬영, 프로덕션 디자인 모두 일급이다. 거의 완벽하게 틈을 보이지 않는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등장인물의 클로즈업이다. 특히 송강호의 얼굴 클로즈업으로 끝나는 마지막 장면은 1980년대라는 시대를 요약하는 대표적인 표정으로 남을 것이다. 이 영화가 장기흥행하기를 바란다. 그건 한국영화의 장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엑스맨 2'는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흥행의 시금석이 될 작품이다. 돌연변이 종자들의 신기한 액션 활약상에 SF 영화에 곧잘 등장하는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끼워 넣은 이 신종 오락 상품은 여전히 볼 만하고 화끈하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중 이를테면 '데어 데블'에 비하면 훨씬 세련됐고, 전편에서 던진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도 최소한의 체면치레는 할 만큼 파고 든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이 영화의 재미는 돌연변이 인간들의 액션을 담는 거의 초현실적인 스펙타클의 매혹일 것이다. 액션의 재미에 치중하느라 플롯의 흐름을 종종 이완시키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습관도 여전히 드러나지만 '엑스맨 2'는 품종개량된 속편으로 별로 손색이 없다.
유오성이 주연한 '별'은 선한 의도를 지녔으되, 손끝은 맵지 않은 범작이다. 슬프게도 알퐁스 도데의 '별'과 같은 불후의 고전으로 남기에는 영화매체의 원시적인 속성이 너무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유오성은 좋은 배우지만 이 초라한 화면에서 자신의 매력을 증명하기에는 너무 힘에 부친다.
/영화평론가·hawks@film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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