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가 들어 처음으로 특별사면·복권이 단행됐다. 대공 학원 노동 집단행동사범 등 국가보안법 집시법 및 노동관련법 위반범이 주 대상이 됐다. 그간 논란이 됐던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안보상황과 군 기강을 감안하여 제외됐고, 일반 형사범은 실무작업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해 따로 시기를 정해 시행키로 했다. 이번 사면에서 정부는 형기의 반을 채우지 못했거나 집행유예 확정 후 6개월 미만이거나 2000년 8·15특사 이후 재범했거나 벌금미납 등 다른 범죄가 병합되어 있는 경우는 대상선정에서 제외함으로써 사면법이 정한 범위 내에서 원칙에 맞게 실시했다고 밝혔다.역대 정부의 사면이 권력형 비리에 연루된 측근이나 고위공직자, 부패정치인, 재벌경제사범을 주된 대상으로 삼아 법질서와 국민의 법의식에 혼동을 초래하고 사면의 본질을 퇴색케 했던 것에 비추어 이번 조치는 나름의 내부적 기준을 갖추려 애쓴 점에서 진일보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시국· 노동사범의 법적 명예회복에 중점을 둠으로써 그 성격을 분명히 한 것도 다른 점이다. 하지만 여전히 왈가왈부 논란이 있어 이번에도 사면에 따른 근원적 문제는 해소하지 못한 듯하다.
일각에서는 현 정권과 코드가 맞는 사람들에 대한 봐주기 사면이라는 비판이 있다. 사면대상이 지나치게 한 쪽으로 쏠렸다는 지적이다. 현 정부가 표방해온 정치적 성향을 볼 때 일리가 없지 않은 지적이다. 하지만 시국사범관련 양심수문제가 이미 해결됐어야 하는 쟁점임을 감안한다면 흔쾌히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비난이다.
또 다른 일각에서는 인권개혁의 변죽만 울린 것으로 수구·공안세력과의 타협의 산물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정치적 신념이나 사상적 컬러로 인해 아직 수인(囚人)으로 남아 있는 양심수를 고려하면 이런 목소리에는 납득할만한 점이 있다.
하지만 이런 불만의 뒷전에는 우리 사회의 이념적 갈등상황이 엄연한 현실로 작용하고 있다. 이번 사면에서 정부가 국민대화합과 법치주의의 조화를 강조했음에도 공안범죄를 없던 일로 되돌릴 수 있을 만큼 사회적· 국민적 합의가 형성되었는가 하는 의문제기가 이 점을 잘 말해준다. 되려 이념적 갈등이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이와 같은 맥락에 서 있다.
이번 조치에 대해 이와 같이 상반되는 평가도 그 나름의 의미는 있다. 하지만 우리의 사면현실과 관련하여 더 근원적인 문제는 사면의 본질에 관한 인식과 우리의 사면법제에 있다. 오늘날 사면은 과거 절대군주가 자신의 의향에 따라 베풀었던 은전이나 시혜가 아니다. 민주적 법치국가의 사면은 사면권자가 법 또는 법적용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오류나 오류가능성을 교정함으로 더 완전한 정의를 실현하는 수단이다. 또한 특사는 법규의 경직성을 완화하여 공정성을 보완하거나, 오판 등 재판의 흠결을 교정하거나, 개전의 정이 현저하여 처벌할 필요가 없는 경우 등 형사정책적 목적에 따라 행해지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우리의 사면법은 이와 무관하게 1948년 제정 이후 한 번도 손질되지 않은 채 빛 바랜 고물(古物)로 남아 있다. 따라서 정권의 갈림에 따른 사면이 있을 때마다 사면권자의 엄격한 자기절제에 맡길 수밖에 없었고, 그렇기에 뒤탈도 많았다.
차제에 우리의 사면법은 제대로 된 법으로 거듭나야 한다. 사면심사위원회의 설치, 일정형기 미경과자의 사면제한, 사면신청절차의 공개, 특정범죄에 대한 사면배제조항의 명문화 등이 논의되어야 한다. 때마침 야당에서 사면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반가운 소리가 들린다. 제발 당리당략에 매이지 말고 다양한 의견수렴과 논의를 거쳐 내실 있는 법을 갖춰 더 이상 사면에 따른 소모적 논쟁이 없길 바란다. 그리하여 사면이 진정 기약 없는 어둠의 수인에게는 한 줄기 광선 같은 희망의 빛이 되고, 사회적으로는 화해와 통합의 기초를 다지는 참된 법 이념으로 자리잡길 소망한다.
변 종 필 인제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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