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건강사회 만들기]<3> 사스의 교훈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건강사회 만들기]<3> 사스의 교훈

입력
2003.04.30 00:00
0 0

이건 분명 요행이거나 신의 섭리다. 방역체계가 엉망이니 어쩌니 해도 사스가 아직 이 정도인 것은 이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다. 홍콩이나 중국은 물론이고, 캐나다처럼 멀찍이 떨어진 나라에 비해서도 우리 형편이 낫다. 설사 정부가 환자판정에 인색했다 해도, 추정 환자 1명, 의심 환자 14명 정도면 성적이 나쁜 편은 아니다.요행이니 섭리를 빈정거리는 말로 들으면 곤란하다. 현재 사스 방역업무를 맡고 있는 인력이나 시설은 이런 말조차 과분할 정도이다. 전체 업무를 총괄하는 국립보건원의 방역과 직원은 '달랑' 5명이고, 보건원 본부의 다른 인력까지 합해도 채 20명이 안된다. 전국의 보건소에 방역관련 인력이 있고 전국 13개 검역소에도 직원이 있다고 하나, 한두개 기관의 인력을 제외하면 이번 일에는 크게 관여하지 않는 '허수'이다. 사람 수만 문제가 아니다. 방역의 일선 관문인 13개 검역소에 의사는 인천국제공항검역소 단 한곳, 그나마 소장 한명 뿐이란 사실은 어디다 말하기도 부끄럽다.

시설도 사정이 낫지 않다. 의심 환자를 격리 치료하고 있는 병원은 이미 만원이고, 새로 전담병원으로 지정하려던 병원은 주민의 반대로 수포로 돌아갔다. 이젠 환자가 생겨도 제대로 치료할 만한 곳도 없는 셈이다. 검사니 연구니 하는 '사치스러운'요구는 말 꺼내기도 어렵다.

이제라도 제대로 태세를 갖추자는 이야기가 당연히 뒤따른다. 그러나 결론은 또 인력, 시설, 그리고 예산의 태부족에 막힌다. 종류도 많은 요란스러운 대책회의는 들여다보지 않아도 결말이 뻔하다. 언론의 지적도 재탕, 삼탕 다를 바 없다. 그저 실무자들이 열심히, 빈틈없이 하라는 대책없는 도덕주의! 이러니 공허한 말로 위기만 면하려 한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물론 또 한번 말로 때울 수도 있으리라. 일년 내내 사스가 있는 것은 아닐테고, 매년 같은 일이 반복될 리도 만무하지 않은가. 그럭저럭 잠잠해지면 인력이니 예산은 또다시 정부부처 내의 힘겨루기가 될 것이 뻔하다. 사스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국내에서만 20억 달러니 어쩌니 해도, 정부가 근본적인 대책에 투자하는 것을 기대하긴 어렵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대구 지하철참사 후의 대책들이 지금 어떻게 되었나 알아보는 것으로, 사스 대책의 앞날을 점치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나는 사스 이후의 장기대책을 믿지 않는다. 아니 믿기 어렵다.

그렇지만 솔직히 미련은 남는다. 새 정부가 국민의 건강과 복지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유례없이 강조했으니 말이다. 혹 조금은 달라질지 한번 믿어봐야 하지 않을까. 정말 다르다면 증거는 딱 한가지다. 미봉책이 아닌 것, 당장의 사건이 아닌 인프라에 투자하는 걸 봐야겠다. 지금부터라도 차원이 다른 인력과 시설, 예산으로 이걸 증명하라.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