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판화가' 김명희(54)씨가 5월 1∼13일 갤러리 현대에서 '유전(流轉)의 역동성'이란 이름으로 개인전을 연다. 김씨는 13년째 강원 춘성군 내평리 궁벽한 산골의 폐교에서 작업하고 있다. 남편인 화가 김차섭씨와 같은 공간에서 거주, 작업하지만 물론 작업장은 따로 쓴다. 요즘은 많은 작가들이 지방 폐교를 작업실로 이용하고 있지만 김씨 부부는 그 원조가 된다.이 폐교는 1990년 소양댐 건설로 인근 지역이 수몰되면서 학생들이 떠나버린 곳이다. 17년간 미국 뉴욕에서 생활하다 귀국한 김씨는 이곳에 자리잡으면서 그 학생들이 쓰던, 버려진 칠판을 발견했다. 칠판에 남아있던 의미를 알아볼 수 없게 반쯤 지워진 한글 문장과 수학 공식, 아이들의 낙서 자국이 이후 김씨 작업의 밑거름이 됐다.
이번 전시에서 김씨는 그 흔적들에서 더듬은 아이들의 모습을 실제 칠판 위에 오일파스텔로 그린 작품들을 보여준다. 김씨는 "칠판을 보는 순간 내가 잃어버렸던 마음, '얼어붙은 시절'이 해빙(解氷)되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김씨 자신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떠돌면서 "2년 이상 한 학교에 다녀본 적이 없는" 어린 시절을 가지고 있었다. 어두운 칠판 빛깔을 배경으로 매미 잡던 꼬마들, 즐거운 소풍날, 김칫거리 장만하던 여인의 모습 등 유전하는 우리 삶의 순간순간이 신비롭게 되살아난다.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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