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봄비가 스며드는 밤. 손전등을 든 섬 주민들이 꼬불꼬불 골목길을 수색한다. "요사스런 것들 한 놈도 안 뵈는구만." 마을 청년의 한마디가 고요한 어둠을 찢는 순간 멀리 풀숲에 기척이 인다. "저그 좀 비춰보란께!" 부랴부랴 손전등이 따라가지만 음산한 울음과 기다란 꼬리만 둥근 불빛 안에 잡혔다 사라진다. 꼬리의 주인은 바로 고양이. 섬 주민과 고양이의 밀고 당기는 신경전은 봄비에 옷 젖는지도 모른 채 계속됐다. 전남 여수시 삼산면. 뭍에서 배로 2시간 거리의 한적한 섬 거문도에 때아닌 '고양이와의 전쟁'이 선포됐다.섬을 장악한 쥐를 잡기 위해 초빙된 묘공(猫公)의 후손들이었다. 허나 쥐가 사라지고 고양이의 숫자가 노인 아이 합쳐 2,700여명인 섬 주민의 두 배를 넘자 문제가 불거졌다. 놈들이 먹이를 구하기 위해 생태계를 파괴하고 민가까지 내려와 행패를 부리자 참다 못한 주민들이 대대적인 토벌에 나섰다. 한마디로 서사묘팽(鼠死猫烹)인 셈.
고양이 토벌작전
고도 서도 동도 등 거문도 3개 섬 중 1,400여명이 사는 고도 거문리. 야심한 밤 박정국(49) 이장이 미끼가 든 장어잡이 통발을 들고 혀를 끌끌 찼다. "(통발은) 인자 안 통해브러." 닭 튀겨 참기름까지 발라 정성스레 미끼까지 준비한 덫은 무용지물. 비웃기라도 하듯 "야옹…" 고양이 울음소리가 정적을 깼다.
"억수로 잡았응께, 영물(靈物)인디 지들도 서로 연락을 했겄지라. 한동안은 잠잠하겄구만." 얼마 전 외부 전문가를 모셔와 두 차례에 걸쳐 벌인 대대적인 고양이 생포작전을 두고 한말이다. 그때 잡혀 뭍으로 올라간 고양이가 무려 400여 마리. "그 사람들도 놀래븝디다. 근디 아직 5,000마리는 더 된다 안 하요. 그 말 듣곤 우리가 놀래브렀당게."
고양이 문제는 지난해 거문도의 최대 현안이었다. "괭이 땜시 못살겠다"는 주민들의 하소연은 섬 전체로 퍼졌고 급기야 5개리 마을 대표 15명이 모인 마을발전협의회 안건으로 정식 채택됐다. 마을 원로들이 머리를 쥐어짜 내놓은 묘책은 4가지.
1. 천적인 족제비를 들여와 소탕한다.
2. 쥐약으로 독살한다.
3. 공기총으로 총살한다.
4. 장어잡이 통발로 덫을 놓는다.
허나 1안은 또다시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이유로, 3안은 잔인하고 사고의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일찌감치 제외됐다. 2안을 실시키 위해 주민들이 쥐약 구하기에 나섰지만 쉽지 않았다. "전에도 몇몇이 재미를 봤거든. 가루나 끈끈이는 안되고 독이 있는 물약만 되는디 허가가 안 나믄 안 판다는 것이여." 결국 4안으로 가닥이 잡혔지만 통 입구가 좁아 고양이 잡기가 수월치 않았다. 그래도 운 나쁘게 덫에 걸리는 놈이 있어 임시방편 노릇을 하던 차에 올 초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섬에 낚시를 하러 오던 배모(40)씨가 "고양이 전문가"라며 흔쾌히 고양이 생포에 나선 것. 트럭에 가득 싣고 온 고양이 덫에 닭 30여 마리를 튀긴 미끼를 넣어 두 차례 각각 3일 동안 고양이를 잡았다. "바구니마다 20마리씩 담아 부두에 쌓아 놨는디 그 소리가 끔찍하드랑께." 생포한 고양이는 모두 환경보호단체와 대학 등지로 보내졌다.
서도 덕촌리의 조말수(56)씨는 그렇다고 상황이 끝난 건 아니라고 했다. "괭이들은 지 영역이 따로 있어라. 마을에 터를 잡고 있던 놈들이 싹 잡혀갔응게 얼마 안가 딴 놈들이 자리를 꿰찰 것이요." 거문리 김정숙(40)씨의 걱정은 보다 구체적이다. "아직도 몇 마리가 어슬렁거린디, 잡것들이 새끼를 뱄더랑게. 한번에 7,8마리 낳아블믄 또 난리를 칠 것이여."
고양이의 거문도 상륙
거문도 주민들과 고양이의 악연은 섬에 '쥐 잡기 운동'이 연례행사처럼 열리던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섬에 천적이 없어 넘쳐 난 쥐들이 농작물을 망치고 애써 잡은 생선을 훔쳐가자 발끈한 주민들이 고양이를 한두 마리씩 들여오기 시작했다.
주민 박모(73)씨가 기억을 더듬었다. "나가 두 마리 사온 게 처음일 것이여. (쥐 잡으라고) 옆집에 꿔주기도 했응게. 그때만 해도 말도 못하게 쥐가 많아 쥐약으론 어림 없었응께. 근디 고양이 덕에 쥐가 주니까 놈(고양이)들이 천덕꾸러기가 되브렀어."
거문리 한 노인(78)은 고개를 끄덕여 동감을 표하면서도 거문도 고양이의 시조는 더 윗대로 올라간다고 했다. "지난번 고양이 잡으러 온 양반들이 그라드만, 잡힌 고양이 중에 영국산도 끼어있다고…." 1885년 영국군의 거문도 점령 사건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2년 동안 머문 영국군이 키우던 고양이들이 씨를 퍼뜨려 오늘에 이르렀다는 설명이다.
고양이의 섬 상륙 기원이야 어찌 됐든 문제는 홀아비 빚 늘 듯 불어난 고양이가 일으키는 피해였다. 쥐가 줄고 애써 잡은 생선에 발톱을 들이밀자 고양이는 마을에서 쫓겨나기 시작했다. 산으로 거처를 옮긴 고양이는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눌러 앉아 토종 텃새인 동박새며, 구렁이 꿩 산비둘기 등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웠다. "거문도 꿩은 깃털이 이쁜 것이 자태가 달라브러. 근디 인자는 울음소리도 들을 수가 없당게."
그때까지만 해도 "에이, 썩을 놈들"하고 말던 주민들이었다. 하지만 산고양이에서 도둑고양이로 이름을 바꿔 마을로 내려오기 시작하면서 주민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거문도 주민치고 고양이 때문에 애를 먹은 경험이 없는 이가 없을 정도. "일본에 수출 할라고 삼치를 곱게 포장해노믄 꼬랑지만 홀랑 뜯어간당께. 고것이 한 마리에 5만원씩인디 환장해블지." 거문도 건어물 박광영(50) 사장은 "부아가 나서 몇 번 쥐약으로 고양이를 죽인 적이 있다"고 했다. "함부로 동물을 죽여선 안된다"는 도시인들의 비난에 귀가 가려울 터. "우리도 짠(불쌍)하지라. 근디 안 당해 보믄 몰라라." 미장원에 마실 나온 아줌마들도 다투어 피해사례를 늘어놓았다. "쓰레기 봉지를 찢어 헤집어 갖고…." "뭘 심(지)도 못하게 망치는 바람에 코딱지만한 텃밭에 그물 울타리 해박은거 보쇼." "오살할 것들, 밤에 얼마나 울어대는지 잘 수가 없당게요." "살쾡이만한 놈들이 10여 마리씩 떼로 몰려 다니면서 빤히 쳐다본디 섬뜩하지라." 결론은 "싹 잡아가브랑게요"였다.
쥐들의 역습
주민들의 대규모 고양이 토벌작전이 끝난 뒤 마을에는 심상치 않은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아따 또 보인다드만. 끈끈이에 몇 마리가 걸렸다 안 하요." "참 요상시럽네. 어떻게 알았으까." 사라졌던 쥐들이 나타났다는 증언이 꼬리를 물었다. 고양이를 피해 바다에 둥둥 뜬 가두리양식장 부표를 갉아먹고 임시막사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연명하던 쥐들이었다. "괭이가 설칠 때는 코빼기도 안 비치드만…." 박신자(60)씨는 "이놈 잡으면 저놈이, 저놈 잡으면 이놈이 속을 썩힌다"고 울상이다. 그래서 3차 토벌을 맡겠다고 나선 순천 고양이 전문가의 방문도 일단 미뤘다. 봄비가 연일 오락가락하는 거문도는 섬 주민과 고양이, 쥐들이 벌이는 3색 줄다리기가 오락가락하고 있다.
/거문도=글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사진 홍인기기자
■ 포획된 고양이 처리
버려진 고양이로 인한 피해는 전국적이다. 농촌에선 논밭을 망쳐놓기 일쑤고 어촌에선 생선을 훔쳐 달아난다. 도심에선 쓰레기통을 헤집는가 하면 불쑥 나타나 놀라게 하고 밤새 울어대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주고 있다. 심지어 할퀴어서 생기는 묘조병, 대변으로 전염되는 톡소플라스마증 등 질병까지 옮기고 있다.
고양이가 늘어나는 것은 애완동물로 키우다 버려진 고양이가 야생상태에서 급속도로 번식하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1회에 7∼12마리씩, 1년에 3회 정도 출산한다.
피해에 시달린 각 지자체는 고양이 포획을 공공근로 사업으로 지정하는가 하면 포상금, 덫 대여 등 갖가지 아이디어를 동원하고 있다. 그러나 포획과정이 비인간적이라는 동물 애호가들의 거센 항의로 선뜻 퇴치 작업에 나서지 못하는 실정이다. 잡힌 고양이는 도살하거나 안락사 시켰지만 동물보호단체의 강한 반대에 부딪쳐 최근 불임시술이 주를 이루고 있다.
/고찬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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