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현대자동차 노사가 협상테이블에 마주앉았다. 국내 산업을 대표하는 현대차의 올 임금인상 및 단체협약 개정 협상이 시작된 것이다. 노조는 기본급 대비 임금 11.01% 인상 주40시간(주5일) 근무 실시 해외투자시 노조와 합의하는 등 노조의 경영 참여 확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상당히 강력한 요구안을 내놓았다. 사측은 요구 수용이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왠지 모르게 위축된 표정이었다. 노무현 정부의 '균형'을 내세운 노동정책으로 노동계가 부쩍 힘을 받고 있다. 노사관계의 지각 변동은 올해 춘투(春鬪)에도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시소게임 벌이는 노사
"무게중심이 노조에 쏠려 있다. 기업들은 이러한 악조건을 극복해야 할 상황으로 받아들이면서 '임전태세'에 들어가 있다."(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
"노사가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관계로 옮겨가는 단계다. 그동안 노동자가 비정상적으로 억눌려왔으나 비로소 정상적 노사관계를 찾아가고 있다."(한국노총 관계자)
두산중공업 사태와 철도 분규 등 노무현 정부 출범 후 처음 맞았던 노사문제들이 풀려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경영계와 노동계의 평가는 판이했다. 과거와는 180도 바뀐 노동계에 대한 정부의 태도에 경영계는 위기의식이 높아졌고, 노동계는 '이제 때가 왔다'며 득의양양이다.
한국노동연구원 이주희 연구원은 "신정부 들어 노조에 보다 많은 힘이 실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두산중공업과 철도 노사 분규의 결말은 이같은 해석을 뒷받침한다. 노조원 분신 사망 사태까지 이르렀던 두산중공업 분규는 사실상 노조의 압승으로 끝났다. 권기홍 노동부 장관의 중재로 노조는 조합원 개인에 대한 가압류 및 손해배상소송 철회, 해고자 복직, 지난해 파업 때 무단결근 처리로 인한 임금 손실분의 50% 보전 등을 얻어냈다. 정부가 사용자인 철도 노사 협상의 타결 내용도 정부가 철도 시설 및 운영 분리 방안을 관철하는 대신 인력 충원, 해고자 복직 등 노조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했다.
하지만 경영계도 '경기 침체'를 내세워 노동 이슈를 잠재우며 노사 역학 관계의 복원을 시도, 더 이상 일방적으로 밀리지만은 않겠다는 각오다.
주5일제 등에서 노사 대립
매년 춘투를 보면 이맘때부터 노사갈등이 점증된다. 그러나 지금은 상당히 평온한 상태다. 두산중공업과 철도 등 '악성' 분규사업장 문제가 해결되는 바람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양 노총이 임단협과 맞물려 노동자 총투쟁을 불 붙일만한 도화선이 제거된 상태다. 게다가 지난 정부까지만 해도 대정부투쟁에 치중하던 민주노총이 노무현 정부와는 대화채널을 구축하는 등 '밀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에서 재개된 주5일 근무제 협상과 산별교섭 등 정치적 쟁점들이 조만간 부각되면서 예년보다는 다소 늦은 5, 6월에 하투(夏鬪)가 뜨거워질 전망이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임단협 요구안의 주요 쟁점으로 노동조건의 후퇴 없는 근로시간 단축과 산별교섭 도입을 제시했으나, 재계와의 이견이 커 합의점 도달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태연 민주노총 정책기획실장은 "제도적 문제는 정부가 두산중공업이나 철도 분규 해결 과정처럼 전향적으로 풀어갈 수 없는 부분"이라며 "노사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사안인 만큼 노동자의 요구가 좌절된다면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 임단협 쟁점
올 임단협에서 노사가 다룰 주요 쟁점은 근로시간 단축과 산별 교섭 문제로 요약된다.
금속노조의 경우 주40시간(주5일) 근무제 도입과 함께 비정규직 노동과 차별 철폐, 근골격계 직업병 대책 마련, 노조활동 보장 등을 임단협 의제로 사측에 제시했다. 금융노조는 올 임단협에서 비정규직에 대해서도 정규직과 동일하게 11.4%의 임금인상을 요구하기로 결정했다. 또 한국노총 산하 제조연대도 임금과 노동조건 하락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임단협 쟁점으로 부각시키기로 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국회에 계류중인 주5일근무제 법안과 관련, 사측과 재협상을 벌이는 한편 법 개정과 상관없이 임단협을 통해 근로시간 단축을 쟁취해내겠다는 방침이다. 노동계는 임금이나 휴가 등 노동조건의 후퇴 없이 주 40시간으로의 근로시간 단축을 요구하고 있으나 경영계는 연월차 휴가 등 유급 휴일을 조정하는 방안을 주장하고 있다.
노조의 산별 교섭 요구도 거세질 전망이다. 금속업종 95개 사업장 노사가 올 임단협부터 산별교섭에 들어가기로 했고, 보건의료노조도 산별교섭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경총은 개별 사업장마다 규모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이중 교섭이 불가피하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으며, 같은 차원에서 산별노조 건설에 대해서도 적극 대처토록 방침을 정했다.
비정규직 채용시 노사 합의 비정규직 축소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동등 대우 보장 등 비정규직 차별 철폐도 노조들이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경영계는 "근로자 채용과 운용은 사업주의 고유권한으로 노조와의 단체 교섭 대상이 될 수 없다"며 강경한 태도다.
노동계는 인사이동시 노사 합의, 공장 이전·사업 확장·구조조정시 노조와의 협의 또는 합의 등도 주요 이슈로 삼아 임단협에서 요구하고 있으나, 경총은 인사 및 경영권에 관한 사항은 경영주체의 고유 권한이므로 교섭 요구를 거부토록 지침에서 밝혔다.
이밖에도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는 근골격계 직업병을 비롯한 산재 대책 등 지금까지 큰 관심을 끌지 못한 산업안전문제를 올해부터 쟁점화할 방침이다.
/문향란기자
■ 변화된 노정관계
최근 정부의 노사관계 정책은 노사간 힘의 균형을 토대로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부가 추진키로한 방안 대부분은 노동계의 활동폭을 넓혀주는 제도를 구축하는 것이어서, 노사간 힘의 중심이 노동계쪽으로 이동하리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노동부의 올해 대통령 업무보고에 따르면 노조의 단체행동권 제한을 풀고 정당한 쟁의 행위 범위를 확대하기 위한 다각도의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직권중재제도가 적용되는 필수 공익사업장의 범위를 축소하고, 직권중재 회부를 자제하겠다는 방침이다. 손해배상, 가압류 남용으로 인한 노조활동 침해를 막기 위해 가압류 범위 조정, 노조의 소명기회 부여 등 개선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산별교섭을 사실상 제약하는 조항도 완화할 계획이다.
두산중공업과 철도 노사 분규의 타결은 정부가 민간부문과 공공부문에서 이와 같은 노사정책의 원칙을 지킨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노동편향적 정책이라는 비판을 낳았다.
두산중공업과 철도 분규 해결 과정에선 노조가 벼랑끝 전술을 통해 실리를 챙기는 선례도 남겼다.
또 대우자동차판매 노조가 제기한 노조원 성향분석 리스트와 관련 노동부는 사업장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하는 등 초반부터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노사 어느 한쪽으로 힘의 균형을 몰아주는 것이 아니다"며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수준에서 노사간 힘의 균형을 유지하려 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경총 등 경영계는 "파업 만능주의가 만연한 노사관계의 현실을 감안할 때 정부의 노동정책은 파업을 더욱 조장할 가능성이 크다"며 강한 불만을 제기해왔다.
하지만 주5일근무제, 공무원노조, 고용허가제, 퇴직연금제 등 제도개선과 관련된 노동현안에서 노사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고 맞서고 있기 때문에, 노정관계가 계속 안정세를 유지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양 노총은 "주5일근무제를 비롯한 각종 노동현안이 노동자의 동의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 법제화가 추진된다면 총파업 등 투쟁으로 맞설 것"이라고 밝히고 있어 노정갈등 관계로 회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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