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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한인 땀과 꿈의 100년]<17·끝> 또 다른 이민, 입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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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한인 땀과 꿈의 100년]<17·끝> 또 다른 이민, 입양

입력
2003.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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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1월 한국인 102명이 하와이에 첫 발을 내딛은 이래 대부분의 미주 이민자는 '꿈과 기회의 땅'을 스스로 찾아 나섰다. 하지만 재미 한인 중 약 10만 명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이민 길에 올랐다. 바로 '세계 최대의 고아 수출국'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과거를 상징하는 한인 입양아들이다. 54년 전쟁 고아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 구호 활동 차원에서 시작된 해외 입양은 55년 이승만 전 대통령의 대통령령으로 합법화하면서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2002년 말 현재 해외로 입양된 한국인은 15만명으로 추산되고, 이 중 약 10만명은 미국 가정에 입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인 사회가 추산하는 전체 한인 이민자(200만명)의 5%나 되는 수치다.

베이비 붐 등으로 해외 입양이 러시를 이뤘던 80년대에는 미국에 입양되는 전체 외국인 중 한국 출신이 50% 이상을 차지할 정도였다. 당시 연간 약 6,000명이 미국 가정으로 입양된 것으로 추산된다. 90년대 들어 2,000명 이하로 크게 줄었지만 94년까지는 미국내 최대 입양아 수입국으로 기록됐다. 미 국무부에 따르면 한국은 2001년에도 1,870명을 미국으로 입양해 중국, 러시아에 이어 3위를 기록하는 등 여전히 고아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고국이 버린 불쌍한 고아', '부모와 피부색이 다른 이방인'등 걱정 어린 시선과는 달리 대부분의 한인 입양아들은 미국 사회에 잘 적응하고 있다. 96년 한국의 대대적 골수 기증 캠페인으로 유명해진 입양아 성덕 바우만(29)씨는 "대부분이 중산층 이상의 유복한 가정에 입양되기 때문에 교육 기회가 많고, 미국 사회에 입양에 대한 편견이 거의 없다는 면에서 축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인 입양아와 가족들은 오히려 미국 내 한인사회의 편견과 고국의 냉대가 가슴 아프다고 말한다. 성덕 바우만의 아버지인 스티브 바우만씨는 "자연스럽게 한국인들과 어울리게 하기 위해 한인 사회에 다가가도 '왜 피부색이 다른 동양인을 입양했냐','아들을 버린 한국의 친부모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등 무례한 질문을 퍼붓거나 입양아들을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이방인으로 취급하기 일쑤였다"고 털어 놓았다.

매년 입양아 1,000여 명이 정체성을 찾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지만 이들은 더 심한 마음 고생을 하고 있다. 뉴욕의 한인입양단체 아카(AKA·Also Known As)의 인터넷 사이트에는 "한국인들은 해외입양아를 모두 창녀의 자식들이라고 멸시하는 편견이 있다", "뿌리를 확인하기 위해 한국에 갔지만 나는 해외 동포도 못되는 외국인에 불과했다"는 등 고국을 원망하는 글들이 수두룩하다.

입양 한인 권익단체인 골(GOAL·Global Overseas Adoptees' Link)의 에이미 인자(33·한국명 진인자) 회장은 "한국은 고아 15만명을 무작정 해외로 보내놓고 마땅한 지원 기관 하나 마련하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은행 계좌를 만들거나 송금할 때 여권, 비자, 취업증명서 등과 한국인의 보증이 있어야 하고, 집을 사거나 임대할 때도 해당 구청에 일일이 신고해야 하는 등 입양아들을 '예비 불법 체류자'로 생각하는 한국이 원망스럽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해외 입양아들을 '잊고 싶은 과거'로 간주하기보다는 튼튼한 해외 한국 인력 네트워크로 이용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워싱턴주의 마사 연숙 브래들리 입양자문관은 "한국어 무상 교육을 실시하고 이중국적을 허용해 입양아들이 한국인으로서의 제도적 권리를 누리게 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하지만 한국 정부가 해외 입양보다는 국내 입양 가정을 현실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지적했다.

/뉴욕=최문선기자moonsun@hk.co.kr

● 성공한 한인 입양아

미국의 한인 입양아들은 부모와 조국에 버림받는 아픔을 딛고 각 분야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다.

가장 성공한 사람으로 꼽히는 인물은 폴 신(67·한국명 신호범·사진) 워싱턴주 상원 부의장. 경기 파주 출신인 그는 19세 때인 1955년 미군 부대에서 일하다 알게 된 군의관에게 입양됐다. 워싱턴대에서 동아시아학 박사 학위를 받고 31년 동안 대학 강단에 서다 98년 유권자의 94%가 백인인 워싱턴주에서 동양계 최초로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지난 해 11월에는 재선에 성공했다.

훈영 합굿(29) 미주리주 하원의원은 지난 해 11월 중간선거에서 71%의 압도적을 득표율로 당선돼 신 의원의 신화를 잇고 있다. 76년 입양돼 미시간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의원 보좌관 등으로 정치 수업을 받았다. 그의 선거구도 유권자의 90% 이상이 백인이다.

수잔 순금 콕스(51) 홀트 재단 부총재는 영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로 56년 홀트아동복지회의 설립자인 고(故) 홀트 부부에 입양됐다. 해외 입양아들이 자동적으로 시민권을 받도록 한 법안을 의회에 통과시키는 등 입양아의 권익 신장을 위해 애쓰고 있다. 빌 클린턴 정부 때 아시아태평양 인종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뉴욕=최문선기자

● 한인 2명 입양 라브너부부

"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것은 입양아들을 평생 짓누르는 상처가 됩니다."

미국 뉴욕에서 '한인 입양아의 대모'로 불리는 사라 라브너(57)씨는 "그 상처를 치유하는 만병통치약은 극진한 사랑 뿐"이라고 말했다. 뉴욕 대학에서 심리 상담사로 활동 중인 그와 남편 빌 라브너(59)씨는 1986년과 88년 큰 딸 릴리(17)와 아들 데이비드(15)를 각각 입양해 키우고 있다.

사라씨가 대모라고 불리기 시작한 것은 9년 전 부부가 함께 한인 입양 가족 모임인 '기프트(GIFT)'를 이끌면서 부터. 기프트는 회원 500여명간의 교류를 통해 자녀들의 정체성 혼란, 뿌리 교육 등 입양 가족이 공통적으로 부딪히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 입양아의 친부모 찾아주기 운동을 조직적으로 벌이고 있다.

릴리와 데이비드도 기프트를 통해 한국의 친부모를 찾아 정기적으로 연락하고 있다. 주위에선 "굳이 친부모를 만나게 해 입양아라는 상처를 들춰낼 필요가 있느냐"며 말리기도 했다. 하지만 "혼란을 겪더라도 스스로 정체성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로서 당연히 할 일"이라는 게 라브너 부부의 생각이었다.

"얼굴은 놀랄 만큼 닮았지만,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엄마와 나 사이에 유리벽이 있는 것 같았죠."

릴리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울릉도에서 노동 일을 하는 친부모와 처음 만난 순간을 떠올렸다. "친 엄마는 나를 버리기 이전에 낳아준 고마운 분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편해졌어요. 이제는 방에 '예진'이라는 한국 이름이 적힌 큰 태극기를 걸어 놓고 한국 가요와 장구 춤을 좋아할 정도로 한국을 사랑하게 됐어요."

한창 사춘기를 겪는 데이비드는 2000년 친어머니를 만난 뒤 말수가 갑자기 적어지는 등 입양아들에게는 통과의례와 같은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다. 라브너 부부는 "한인 교회에서 운영하는 한글학교에 보내고, 가족이 함께 한국 문화를 배우는 등 한국을 부정하기보다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하고 있다"며 입양아들의 위기를 극복시키는 노하우를 제시했다.

/뉴욕=최문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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