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적으로 '사스(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 확산에 따른 경제적 피해가 늘어나는 가운데 북한의 핵 보유 시인으로 지정학적 불안이 다시 고조되면서 회복조짐을 보이던 우리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더욱이 28일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 P)가 방한해 국가 신용등급 평가를 위한 연례협의를 시작하는데다, 생산 물가 수출 등 주요 경제지표가 잇달아 발표되기 때문에 이번 주가 정부 정책 전환의 최대 고비가 될 전망이다.정부는 사스 확산과 북핵,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 등 3대 악재의 부각으로 국내경제가 침체국면으로 본격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추경예산 편성, 금리와 세제를 통한 경기조절 등 경기부양책을 조기 시행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27일 정부와 민간 연구기관 등에 따르면 사스로 인한 국내경제 피해규모는 최대 33억 달러(약 4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우리가 중국, 홍콩 등 사스 위험지역에 수출하는 물량이 전체 수출규모의 50%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사스로 인해 중국 등 아시아 지역의 내수경기 침체가 예상되는 만큼, 사스 피해가 국내에 본격 확산되지 않더라도 17억∼30억 달러의 수출 피해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금융시장 불안, 외화차입 차질
2주간 급락하며 1,200원대 초반에서 안정세를 보이던 원·달러 환율이 북핵 여파로 하루 만에 17.4원 뛰어오르는 등 금융시장도 동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북핵 파문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경우 연고점인 1,264원을 위협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무디스, S&P 등 신용기관들이 국가 신용등급을 낮출 위험이 커진 만큼, 증시에서도 SK글로벌 사태로 대기업 마저 불신하기 시작한 외국인이 본격적인 셀 코리아에 나설 것으로 우려된다.
금융권은 가뜩이나 불안한 금융시스템에 사스와 북핵이라는 악재가 겹치면서 기업영업 및 외화차입에 차질이 빚어질까 다시 긴장하고 있다. 사스로 인해 중국 수출기업 등의 상황이 악화, 부실이 급격히 늘어나거나 주요 외화차입선인 홍콩지역의 금융기관 업무 마비로 중장기 외화차입이 막힐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미 2·4분기 중 홍콩에서 로드쇼를 계획했던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일정을 취소하고 채권발행을 백지화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정부는 이에 따라 통계청의 산업활동 동향이 발표되는 이번 주 중 한국은행과 무역협회, 전경련, LG·삼성 등 민간 경제연구소가 참석하는 '거시경제점검회의'를 열고 사스와 북핵 문제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대응방안을 논의한다.
추경 조기편성과 금리인하 가능성
정부는 향후 경제여건이 더욱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 따라 추경예산의 조기 편성과 집행을 통해 경기를 떠받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아울러 물가안정과 수출 업체에 대한 지원 강화, 해외여행 위축으로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는 항공업계에 대한 법인세 감면, 사스 확산 방지를 위한 방역대책, 국가신용도 유지방안 등 경기의 급격한 위축을 막기 위한 종합대책을 조기에 마련할 방침이다.
금리인하에 부정적이었던 한은도 다음달 콜금리를 0.25%포인트 정도 인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금융통화위원들 사이에서는 이미 금리인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상황이지만 부동산 가격급등 등 물가불안 가능성 때문에 망설이고 있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사스가 국내에 유입되고 북핵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질 경우 소비나 수출이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이번 주 발표되는 산업활동 동향, 소비자물가 동향, 수출입실적 등 주요 경제지표가 정부 경제정책 전환의 가늠자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고재학기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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