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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54>영리한 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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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54>영리한 난초

입력
2003.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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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에 꽃이 가득합니다. 봄이 시작할 즈음에 주춤주춤 피어나던 작고 수줍던 꽃들이 어느 순간 마치 폭발하듯이 꽃잎을 부풀려 올립니다. 꽃의 향연은 가을이 되도록, 또 겨울까지 이어질 것이지만 이 계절은 꽃들의 축제라고 말해도 무색치 않을 만큼 대단합니다. 더구나 이번 주에는 몇 년에 한번 듣기 어려운 식물원의 개원소식이 두 곳에서 들려오고, 꽃박람회니 꽃잔치니 하는 크고 작은 꽃들의 페스티벌이 도처에서 열립니다. 1년 중 꽃을 가장 강하게 느낄 수 있는 시절인가 봅니다.세상엔 정말 많은 종류의 꽃이 있습니다. 화려한 꽃 모습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꽃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은행나무나 소나무 꽃에서부터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는 튤립이나 장미, 새를 닮은 극락조화…. 이렇게 많은 식물의 꽃 중에서 난초과에 속하는 종류가 가장 진화했다고 합니다. 진화의 방향이야 복잡할 수도 단순할 수도 있지만, 난초과식물이 가장 진화된 식물이라는 것에는 학자들 사이에 아무런 이견이 없습니다.

난초과 식물이라고 하면 우리가 흔히 춘란이라고 부르는 보춘화(報春花)와 품격이 고고한 한란(寒蘭)이 있고,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서양의 난초(양란이라고 부릅니다)도 있습니다. 우리 땅에 자라는 난초과 식물 중에도 알고보면 자갈색의 아름다운 새우난초, 노란색이 화려한 금새우난, 한 마리의 흰 새가 날아가는 듯한 해오라비난초 등 특별한 모습의 식물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난초과 식물은 모두 좌우가 똑같습니다(상하는 다릅니다). 또 가운데에 순판(脣瓣)이라는 꽃잎이, 뒷면에는 길쭉한 꽃주머니가 있는 것도 공통점입니다. 하지만 기본 구성은 이처럼 비슷해도 만들어내는 모습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이런 난초과 식물들이 특별한 모습으로 곤충을 유혹하고 심지어 속임수까지 써 가면서 지극히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들여다보면 많은 생각이 듭니다. 대부분의 식물은 달콤한 꿀과 꽃가루를 만들어 곤충을 부르는데 난초는 절반 정도만 이 방식을 채택합니다. 어떤 난초는 특별한 향기로 곤충을 유인하고, 어떤것은 꽃이 있는 다른 난초와 똑같은 모양을 만들어 순진한 곤충들이 어디에 꽃이 있을까 하고 찾는 과정에서 꽃가루받이를 이루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난초과 식물들은 꽃가루를 미세한 가루 대신 끈끈한 덩어리로 만들어 곤충에 들러붙게 합니다. 꽃가루가 바람에 흩날려 중간에 손실되는 일없이 다른 꽃의 암술머리에 안전하게 얹혀지도록 하기 위해서죠. 이렇게 되면 한 씨방에서 씨앗이 될 수 있는 밑씨가 대부분 꽃가루들 만나 그만큼 많은 숫자의 씨앗을 만들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난초는 한 개의 씨방에 300만개의 씨앗을 담아내기도 합니다.

아주 영리하고 약삭빠른 난초를 바라보면 요즘 세상에서 아주 잘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참 닮았습니다.

그래서 단순하고 심지어는 미련하게 느껴질 정도로 온 지상에 꽃가루를 날려 암술과 만날 우연을 기다리는 참나무 꽃들의 우직함이 마음에 남습니다.

이 유 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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