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의 한 고성에서 가졌던 공연 소식이 국내 공중파 TV 등을 통해 전해지자, 여기저기서 출연 제의가 들어 왔다. 그럴 때면 나는 "10억을 갖고 오면 하겠다"고 대꾸해 주었다. 헛말은 아니었다. 나이트 클럽, 발라드 경연장, 재즈 페스티벌 등과는 다른 진짜 록 무대를 제대로 꾸미려면 그 정도 규모의 예산은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 말은 결국 우리의 라이브 록 문화를 살려 내야 한다는 뜻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매체의 시대, 리얼 뮤직이 자꾸만 초라해져 가는 시대에 나는 진짜 공연이란 이런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기업의 참여를 유발하도록 상업성 있게 무대를 꾸며 후세에 표본이 될만한 록 무대를 보여주려면 그 만큼의 투자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록이란 항상 당대 문명의 첨단 장비와 호흡을 함께 해 왔다는 평소의 지론은 그러나 아직 합당한 답을 찾지 못 하고 있다. 그것은 결국 사람의 문제라고 본다. 현재 우리의 공연 하드웨어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그것을 결집해 제대로 된 하나의 무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인력이 없으니 이만저만한 불균형이 아니다.
두 번째 '신중현 그룹'은 2002년 10∼12월 라이브 클럽 우드스탁에서 2주에 한 번꼴로 공연을 가졌다. 이후 음반 복각, 인터넷 중계 작업 등으로 클럽안은 난장판이 돼 버려 라이브는 현재 중단 상태다. 그러나 주말에 한 번꼴로 우드스탁서 만나 언젠가 있을 라이브 무대를 위해 연습을 계속하고 있다.
나의 미래는 인터넷에 있다. 하드웨어 준비와 자료 정리 등의 작업을 거쳐 5월부터는 내가 찍어 둔 동영상을 나의 홈 페이지에 새롭게 올릴 계획이다. 생중계는 파일 용량이 너무 커 힘들다. 현재 주력하는 것은 공연 장면을 압축 파일로 만드는 작업이다. 내가 20년 가까이 다듬어 온 '3·3 주법'도 여기에 자세히 소개된다. 본격 서비스는 초가을부터 유료로 실시할 작정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음악하는 사람들이 인터넷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데 있다. 내가 동영상 작업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도 그들에게 좀 더 피부에 와 닿게 그 주법을 소개하고 보급하기 위함이다. 필요한 동영상은 클로즈 업 전용 카메라 등 모두 6대에 각도를 달리 해 촬영할 예정이다. '신중현 그룹'의 연습 장면도 포함된다.. 캠코더로 촬영한 뒤 '프리미엄'이란 프로그램을 써서 인터넷도 알아들을 수 있는 신호로 변환시키면 된다.
인터넷 동영상 작업의 출발이 되는 캠코더와 인연을 맺게 된 지는 오래다. 그것이 한국에 첫 소개되던 1990년대 초부터 깊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쇼 뮤직만을 요구하던 TV의 가요 프로그램에서 노골적으로 소외되면서 찾게 된 나름의 대응책이었다. 당시 KBS-TV의 '열린 음악회'에 나갔던 것은 하도 '내가 꼭 나와야 된다'고 해서였다.
PD의 입맛대로 이쁘게 노래하는 것을 거부한 나의 록, 나의 리얼 뮤직은 사실 방송의 적이었다. 나의 히트곡들은 모두 음악 감상실이나 라이브 무대를 통해 대중과 만났지, 방송을 타고 선을 보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방송이 내게 한 것이라곤 정부의 방송 금지 판정을 충실히 따른 것뿐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나를 찍지 말고 내 음악을 찍으라"고 웃으며 했던 말을 쇼 프로 제작진들은 농담으로만 받아 들였다. 내가 그런 데 출연할 이유가 있는가.
나는 지금 내 음악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공연장, 음반, 영상, DVD 등 전자 제품이 하나로 어우러진 총체적 시스템으로 쇼 음악과 스타 시스템으로 왜곡된 우리의 음악을 살려내자는 이야기다. 패기 넘치던 뮤지션들이 어려서 꿈꿔 오던 자신의 예술 세계를 포기해 가야만 하는 우리 현실이 너무나 불행한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야만 TV를 탈 수 있는 우리의 현실이 서글프다. 현재 는 록 공연만을 고집한다면 그 뮤지션은 생활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라이브가 살아 나면 전자 제품, 영상 기술, 음반 산업, 조명 산업 등 모든 것이 다 살아 난다. 오늘도 후배들은 매스컴을 한 번 타보려 음악성은 뒤로 하고 쇼만 한다. 나 자신부터가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자본이 없으니 딱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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