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무악동 독립문 공원에서 발족식을 가진 '재한 쿠르드인 모임' 대표 이스마엘 메르샴(40·사진)씨는 "한국에 오게 된 것은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라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이스마엘씨의 인생 역정은 '피지배 민족의 아픔'을 생생히 증명한다. 이라크 바그다드 동쪽의 쿠르드인 집단거주지인 카나킨에서 8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난 그는 명문 바그다드대를 졸업하고 고향에서 수의사로 일했던 엘리트. 벌이가 좋아 유복한 생활을 했지만 대학친구 2명이 후세인 정권을 비판하다 처형되고 누나와 형의 가족이 이라크 남부로 강제이주 당하는 등 후세인 정권의 쿠르드 인종청소작전이 본격화하자 1994년 요르단으로 탈출했다.
유럽 이주를 꿈꾸던 이스마엘씨에게 한국이란 나라는 정말 우연하게 다가왔다. 심심풀이로 보던 한 시사잡지에서 '극동의 민주주의 국가-한국'이라는 기사를 읽게 된 것. "한국에 가면 뭔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희망을 안고 95년 한국에 온 그는 다른 중동국가 노동자들처럼 인천의 주물공장, 화학공장 등에서 막노동에 종사했다.
98년 법무부에 난민신청을 했다가 기각당한 점이 섭섭하기는 하지만 이스마엘씨에게 이제 한국은 '제2의 조국'이나 다름없다. 재작년에는 한국 여성을 아내로 얻었고 내년에는 한국으로 귀화할 것도 고려중이다.
이스마엘씨는 난민신청을 도와주었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쿠르드인들끼리의 만남을 주선해준 '희년 선교회' 등에서 만난 '양심적인 한국 지식인'들에의 은혜를 잊을 수 없다고 몇번씩이나 강조했다.
이스마엘씨는 "모든 것이 있으나 정작 '자유'는 없는 이라크를 생각하면 나의 한국행은 '신의 가호'였다고 생각한다"며 "한국인들도 오랫동안 식민지 생활을 경험한 만큼 우리같은 피지배 민족의 아픔을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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