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과학기술 중심사회'가 통치의 한 기본방향으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명확한 개념을 주지 못해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과학기술이 관련 종사자들만의 전유물로서 사회구성의 종속변수에 머물러 있는 우리 현실에서 과학기술 중심사회라는 말이 자칫 권력의 이동, 세대교체, 진보의 개념을 뜻하는 것으로 비쳐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과학기술 중심사회의 진정한 의미는 다른 데 있다. 과학기술이 복잡하고 난해한 세상의 현상을 조직적으로 간단하게 풀이하듯이, 과학기술 중심사회란 객관적이고, 체계적이며, 질서를 존중하는 합리적인 사회를 의미하는 것이다. 혹자는 논리적인 사회를 여기에 추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지면 논리에는 감성적이고 주관적인 가치관이 많이 내포되어 있어서 반드시 과학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실제로 세상은 객관적인 질서를 통해서만 진화하는 것이 아니고 전략을 통해서 변화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딕시트가 말한 대로 자기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논리를 개발하고 남보다 먼저 앞서 나가는 전략을 구사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은 전문적으로 또는 경험적으로 게임이론이라는 과학적인 논리를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과정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논리를 앞세운 사회를 과학적인 사회로 잘못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혼돈으로 인해 현재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회적 갈등이 빚어지고 그것이 지속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상을 중시하는 사람들의 논리 속에는 현실에 대한 고려가 짧고 반대로 현실주의자들의 논리 속에는 개혁적인 요소가 부족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기들의 논리만이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의 논리를 매도하는 이분법적인 습관을 갖고 있어 사회갈등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과학기술 중심사회는 이러한 갈등구조를 객관화하고 체계화해서 이익을 분석한 후에 합리적인 최종안을 결정해 관련된 사람들이 여기에 자연스럽게 승복하는 사회를 말한다. 이러한 사회구조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물론 과학적 사고와 체계에 익숙한 과학기술자들이 사회의사결정 구조에 많이 참여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많은 선진국가들이 과학기술자 및 과학기술을 경제와 사회의 종속변수로만 보지 않고 독립변수로 대우하기 시작한 것도 이러한 인류사회문화의 변화와 깊은 관계가 있다.
이제까지 우리나라는 많은 갈등구조를 정치적인 결단을 통해서 수습해 왔다. 이러한 전통 때문에, 정치는 갈등을 야기한 사안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바뀔 때마다 비정상적이고 비윤리적인 것으로 억울하게 매도를 당해 왔다. 이제 과학기술적 사고와 결정이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는 주역으로 나서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갈등을 수습하여 사회를 안정시키는데 공헌하겠다는 개념의 총칭이 바로 과학기술 중심사회인 것이다.
최근, 방사성폐기물을 관리하는 부지를 선정하는 문제 역시 서로 다른 이해를 가진 그룹들이 자기 방식의 과학적인 논리를 앞세움으로써 사회적인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원자력 에너지의 활용은 에너지 부존자원이 거의 없어 97%를 외국에서 수입해서 써야 하는 우리 실정에서 45년 전에 정부가 결정한 국가정책이다. 그리고 그 정책은 그동안 경제개발과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공헌한 것이 사실이다. 오일파동, 걸프전, 이라크전쟁 기간에도 경제성이 높은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한 원자력 에너지는 우리에게는 필수적인 식량과 다름없다. 따라서 그런 과정에서 발생한 방사성폐기물을 관리할 부지를 마련하는 일은 우리가 얻은 이익에 대해 치러야 할 작은 대가인 것이다.
세상은 우리가 무작정 갈등하고 주저할 시간을 항상 주지는 않는다.
신 재 인 한국원자력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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