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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과 사회]<2> 우리사회에서 운의 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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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과 사회]<2> 우리사회에서 운의 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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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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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열풍우리가 납득하기 어려운 남의 불운과 불행에 대해 연민과 분노를 느낀다면 남의 행운에 대해서는 어떤 느낌을 갖게 될까.

한국일보 22일자 '현장르포'는 최근 로또 복권 사상 최고액인 407억원 당첨자가 나온 춘천 현지의 표정을 전하면서 부러움과 상대적 박탈감을 묘사했다. "그 경찰관이 남을 열심히 도와주는 사람이어서 하늘이 복을 준 거야"라고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돈이 돈 같지를 않으니 일할 마음이 나겠느냐"고 허탈해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부러움과 허탈도 언젠가는 사회적 분노를 싹 틔울 수 있다.

지난해 말 로또 복권 판매가 시작된 후 조금씩 불기 시작한 로또 열풍은 이미 광풍이 된 지 오래다. 1등 당첨 확률이 800만분의 1이니, 가히 하늘의 별따기지만 그래도 하루 아침에 수십억, 수백억원을 거머쥐는 사람이 실제로 나오고 있으니 유혹이 크지 않을 수 없다.

운만 닿으면 2,000원으로 수십억, 수백억 원을 거머쥘 수 있다는 희망은, 아무리 실낱 같더라도, 고달픈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이만저만 짜릿한 흥분이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는 속담이 마치 자신을 위한 계시인 양 앞을 다투어 로또 열기에 빠져 들고 있다. 용돈을 아껴 조금씩 로또 복권을 사는 것은 물론이고 더러는 수천만원을 퍼붓는 사람도 있다. 행운의 복권방을 찾아 전국을 헤매는 '복권 순례'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복권동호회가 조직되고, 나름대로 당첨 비결을 찾는 연구 모임까지 생겼다.

흔히 도박은 운이 7할, 기술이 3할을 좌우한다는 뜻에서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고들 한다. 기술보다는 운의 영향이 더 크다는 뜻일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노하우가 있어야 이길 확률이 그만큼 높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크게 보아 복권도 하나의 도박이지만 운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운십기영'(運十技零)의 속성이 강하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언뜻 복권은 어떤 도박보다도 공평하다는 착각을 한다.

건전한 근로의식 위협

물론 로또 복권을 비롯한 복권 제도가 전혀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서민들이 적당히 즐길 수만 있다면 따분한 일상에 작은 활력소가 될 수 있다. 또한 정부가 수익금으로 다양한 사회·문화사업을 벌여 시민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복권 사업은 기본적으로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어 한 두 명의 '복권 재벌'을 탄생시키는 구조이다. 전체 수익금의 절반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운영자가 나눠 가진다. 시간이 갈수록 서민의 주머니를 가볍게 한다는 점에서 복권은 역진세적 성격이 강하다. "당신도 인생역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부추김은 실은 대부분의 복권 구입자를 기만하는 말이다.

더욱이 몇 명의 벼락부자를 만들어 주는 대신 일반인들의 건전한 근로의욕을 앗아가 버리는 아편 같은 성격은 큰 문제가 된다. 운만 좋으면, 또는 복권 당첨자들이 대개 꾸었다는 돼지꿈만 꾸면 당장에 거금을 쥘 수 있는데 왜 허리가 휠 정도로 열심히 일해야 한단 말인가. '복권 재벌'의 신화를 좇는 현상은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는다'는 일반적 정의의 원리에 대한 중대한 침해이자 그것을 믿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도덕성에 대한 모독이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성실과 노력에는 보상이 따른다는 교과서적 가르침은 오랫동안 냉소의 대상이 돼 왔다. 해방과 한국전쟁, 급격한 산업화의 와중에서 부의 축적 과정이 왜곡됐다. 그 결과 좀처럼 부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근면과 노력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풍토를 조성해야 할 시점에 불어 닥친 로또 광풍이 그나마 조금씩 싹트기 시작한 건전한 근로의식을 위협할 수 있어 우려할 만하다.

인간의 탐욕 파고드는 운명의 신의 간지

우리 사회에서 운의 위세를 보여주는 것은 로또 광풍만이 아니다. 경마와 경륜·경정, 카지노, 부동산 투기 등도 로또 복권 못지 않은 열기에 휩싸여 있다. 경마장이나 카지노에서 전 재산을 날리고 자살을 기도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이미 뉴스가 되지 못할 정도이다. 부동산 투기로 한 몫을 챙기려는 현상도 낯익은 모습이다. 수백 대 1의 경쟁을 뚫고 노른 자위의 아파트나 주상복합건물에 당첨되기만 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1억원 이상의 프리미엄이 붙으니 우리 대부분이 잠재적 부동산 투기꾼이 될 수밖에 없다. 부동산 투자로 거액을 챙긴 사람들의 성공담이 신문과 방송에 소개되는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으니 말이다.

한때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정보기술(IT) 벤처 열기도 운에 기대는 한탕주의 풍조와 무관하지 않다. 자금을 끌어 들여 벤처 기업을 세우고, 주가 끌어 올리기에 매달리는 벤처기업가와 그에 질세라 벤처 주식 구입에 열을 올린 일반 투자자들이 '힘을 합쳐' 거대한 벤처 거품을 만들었다. 정부도 전혀 수익구조를 갖지 못한 부실 벤처기업에 대해서까지 '불굴의 도전정신'을 칭송했다. 지금은 많이 빠진 벤처 거품은 정부가 물꼬를 터 줄 경우 시민의 한탕주의 심리가 어떻게 폭발하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어떤 사람들은 시끌벅적하고 들뜬 듯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마치 건강하고 활력이 넘치는 사회의 징표로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큰 착각이다. 한탕주의 풍조가 만연한 사회는 겉보기에는 활기차고 화려할지 모르지만 그 이면에는 절제되지 않은 인간의 탐욕과 욕망을 틈타 지배 영역을 넓히는 운명의 신의 간지(奸智)가 숨어 있다.

'운명은 대책 없는 곳에서 맹위'

왜 우리 사회에서는 우연과 운이 이처럼 맹위를 떨치는 것일까. '운명의 힘은 이를 극복할 대책이 없는 곳에서 더욱 맹위를 떨친다'는 마키아벨리의 지적이 좋은 답이 될 만하다. 또 사회 발전을 맹목적인 운의 힘에 대한 인간의 집단적 대항이란 관점에서 본다면 사회 발전의 낙후가 원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놀드 토인비의 유명한 '도전과 응전' 가설은 예측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와 사회적 인습에 대한 끊임없는 저항이 사회 발전과 도덕성 향상을 이끌었다고 본다. 고도로 복잡화한 현대 문명과 근대적 시민사회, 그리고 인권의식의 성장 등은 운의 힘을 최소한으로 제약해 보려는 인간의 집단적 대응이 누적돼 온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사회적으로 불운한 사람들의 절망감을 해소해 줄 제도를 갖추지 못한 것이 우리 사회에서 운이 위세를 부리는 근본 요인인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 생계 유지도 어려운 빈민들이 있다. 그들 가운데는 부모님으로부터 물려 받은 장기는 물론 성(性)을 팔아야 하는 상황에 몰린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도덕적 고결성과 자존심을 지키기도 어렵다. 그런데도 사회적 관심은 낮기만 하다.

무엇보다 경쟁적 입시제도와 성장 위주의 경제정책, 물질만능주의 풍조는 운의 위세를 제한하기 위한 구조적 개혁을 가로막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시장만능 논리에 따른 세계화 흐름도 개인과 집단의 탐욕과 경쟁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 좌절을 해소할 배출구를 갖지 못한 사람들은 가는 희망에라도 매달리게 된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아 보려는 심정으로. 또 부의 축적으로 이미 물질적 행복의 기반을 갖춘 사람들조차 아흔 아홉의 재물을 백으로 만들려고 한다. 이처럼 우리 사회의 도덕적 지반을 흔들고 있는 로또 열풍, 경마와 카지노 바람, 각종 투기는 사회의 구조적 취약성과 도덕적 미성숙을 틈타 운이 지배력을 확대하고 있는 현상에 다름 아니다. 오, 운명의 신이시여 부디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김 비 환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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