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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782>데 쿠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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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782>데 쿠닝

입력
2003.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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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4월24일 화가 윌렘 데 쿠닝이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태어났다. 1997년 몰(沒).'여인' 연작으로 잘 알려진 데 쿠닝은 네덜란드인으로 태어나 미국인으로 죽었다. 그가 미국으로 건너간 것은 24세 때인 1926년이다. 뉴저지주의 호보컨에서 잠시 머문 데 쿠닝은 이듬해 뉴욕으로 건너가 정착했고, 1940년대 이후에는 추상표현주의자 또는 뉴욕파라고 불리게 될 전위 예술가 집단에 속하게 되었다.

1920년대 말 이래 칸딘스키의 추상 회화를 가리키는 말로 퍼지게 된 추상표현주의는 1940년대 들어 데 쿠닝, 프란츠 클라인, 잭슨 폴록, 바닛 뉴먼, 마크 로스코, 클리퍼드 스틸 등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한 미국 화가들의 작품 세계를 주로 가리키게 되었다. 데 쿠닝은 추상표현주의의 여러 경향 가운데 액션페인팅을 대표했다. 데 쿠닝, 클라인, 폴록 같은 액션페인터들은 즉흥적인 몸짓 효과나 붓 또는 페인트의 질에 바탕을 두고 조형 세계를 펼쳐나갔다. 데 쿠닝의 예술 세계는 또 추상적 형상을 기하학적 틀에서 찾지 않고 살아있는 유기체에서 구하려고 했기 때문에 '바이오모픽(생명형태적) 아트'라고도 불린다.

20세기 초까지 조형예술의 유일한 수도였던 파리는 20세기 중엽 이후 그 수도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뉴욕이 또 다른 수도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그 무게 중심은 점점 뉴욕쪽으로 쏠리고 있는 듯하다. 1940년대 이후의 뉴욕파는 그 쏠림의 시발점이었다. 양차 세계대전 사이에 활동이 뚜렷했던 파리파가 외국 출신의 개인주의적 유대인 예술가들이라는 점 말고는 유파적 단일성이 옅었듯, 데 쿠닝이 소속된 뉴욕파 역시 유럽의 쉬르레알리슴(초현실주의)에 영향을 받았다는 점 말고는 내적 단일성이 옅은 각양각색의 전위 회화 그룹이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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