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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평양에서 온 아이

입력
2003.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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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최병선 글·그림 아카데미아 발행·9,000원

즘엔 '파'를 싫어하는 아이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독특한 냄새 때문에 아이들은 파를 먹지 않겠다고 투정을 부린다.

한국전쟁과 모진 가난을 겪은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는 어떨까. 먹을 것이 없어 콩나물밥을 특식으로 알고 입맛 다시던 그 세대의 어린이들에게 파는 좋은 음식일 뿐 아니라 재미있는 장난감이었다. 실파를 손가락만하게 잘라 어머니가 '파피리'를 만들어 주시면, 그 걸 입에 물고 매운 냄새를 훌훌 들이마시며 불어서 "삐, 삐" 소리를 즐겼다.

배고픈 줄 모르는 대다수의 요즘 아이들에게 이런 식의 이야기는 넋두리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중장년 이상의 세대에게 이런 경험은 범상한 추억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잊기 힘든, 아니 누가 잊으라고 해도 잊고 싶지 않은 아프고도 아름다운 기억이다.

중견화가 최병선씨가 스포츠조선에 연재했던 '아빠 어렸을 적엔…'을 묶은 이 책은 칠성이라는 월남 가정의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1950∼70년대의 자잘한 추억을 수채화로 그린 만화와 짧은 에세이로 풀어냈다. 책은 모두 10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부모님, 친구, 풀벌레, 냇가, 여자친구, 들길, 배고픔, 비오는 날, 하늘, 그 시절 등은 모두 농촌에서, 그리고 자연 속에서 살아가던 시대의 풍경을 담고 있다.

그러나 향기로운 자연에 배어 있던 가난과 전쟁은 아이들의 가슴에 배고픔이라는 상처를 남겼다. 배가 고픈데 먹을 것이 없다는 것, 그래서 허기에 지쳐 아카시아 꽃을 따먹다가 벌에 쏘여 죽은 아이의 주검을 본다는 것은 겪은 자들이 아니면 가슴으로 느낄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아이들과 함께 보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책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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